《 날카로운 훅이 허공을 가른다. 타다다다닥…. 줄넘기하는 발놀림도 잽싸다. 연극 ‘이기동 체육관’(김수로프로젝트 4탄)이다. 공연이 열린 7일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2관은 권투 선수들이 무대를 꽉 채운 것 같았다. 20년 지기 친구 김수로(44·마인하 코치 역)와 강성진(43·청년 이기동 역)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진하게 우러난 땀을 뚝뚝 흘렸다. 2009년 초연된 ‘이기동 체육관’은 권투를 통해 잃어버린 꿈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맨몸으로 무대에 올라 땀 흘리는 배우들을 보노라면 사각 팬티 하나만 입고 링에 오르는 권투 선수의 모습이 겹쳐진다. 공연 시작 전 김수로와 강성진을 만났다. 》
연극 ‘이기동 체육관’에 출연하는 김수로(오른쪽)와 강성진. 김수로가 “예전과 달리 요즘은 피곤해서 툭툭 쓰러진다. 열정이 식은 건가?”라고 고민을 털어놓자 강성진이 말했다. “열정 안 식었어. 나이 때문이야.”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땀
강성진은 하루에 8시간씩 3개월 동안 권투 연습을 했다. 8kg이 빠졌다. 그는 “권투 실력은 연기로 표현할 수 없다. (KBS 드라마) ‘조선총잡이’ 촬영할 때 빼고는 매일 연습에 매달렸다. 무대가 늘 목말랐는데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너무 힘들어 곧바로 후회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옆에서 김수로가 “‘이기동 체육관’ 아니면 이렇게 땀 흘릴 수 없다. 무릎이 다 나갔다. 그런데 끝나면 또 하고 싶어진다”라고 거들었다. 그사이 강성진은 훅을 날리는 연습을 했다. 배우들도 한 명씩 무대로 나와 줄넘기, 푸시업을 하기 시작했다.
난감한 순간도 있었다. 2일 저녁 공연 시작을 앞두고 에어컨이 갑자기 고장난 것. 푹푹 찌는 날씨에 다닥다닥 붙은 소극장 좌석에 땀을 줄줄 흘리는 배우들까지, 그야말로 한증막이 됐다. 전석 매진이었던 이날 중간에 나간 관객은 200여 명 가운데 10여 명에 불과했다. 배우와 관객 모두 땀범벅이 된 채 자리를 지켰다. 김수로는 “기립박수를 보내주셨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그 행복함이란…”이라며 활짝 웃었다.
○ 끈
두 사람은 대학생이었던 1993년부터 친구로 지냈다. 김수로가 영화 ‘쉬리’로 데뷔할 수 있었던 건 강성진의 소개 덕분. 강성진 역시 김수로가 극단 유시어터를 소개해줘 영화 스태프에서 배우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서로를 이끌어 주는 끈이 된 것. 강성진의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도 김수로였다.
“‘진짜 사나이’ 촬영 때문에 공연장에 못 와도 마음이 편해요. 성진이를 믿으니까요. 제가 없던 사이 수락산 가서 애들 데리고 닭볶음탕도 해 먹이고. 연극 출연료를 애들 밥 먹이는 데 반 넘게 썼더라고요!”(김수로)
무엇이 그토록 둘을 단단히 묶어 놨을까.
“수로는 뭔가 다른 매력이 있어요. 쇼맨십에 자신감, 리더십 있고, 무엇보다 (제게) 잘 맞춰줘요.”(강성진)
“저는 쩨쩨하고 잔머리 굴리는 거 정말 싫어해요. 성진이는 모나지 않고 착해요. 공을 들여서 많이 져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하하.”(김수로)
○ 꿈
김수로는 연극 ‘밑바닥에서’ ‘데스트랩’,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아가사’ 등 ‘김수로프로젝트’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거머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연계에서는 김수로가 잠시 관심을 두는 거라 생각했지만 프로젝트가 9탄까지 이어지면서 공연에 대한 그의 진심을 인정했다. 이번 공연은 아홉 작품 중 4탄을 무대에 올렸다.
김수로의 궁극적인 꿈은 연극학교를 세우는 것. ‘김수로프로젝트’도 그래서 시작했다. 강성진은 그 연극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하나 더.
“수로에게 공연 시스템을 배우다 보니 연극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어요.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아동극을 만들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