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중년男]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한… 그 남자가 나는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8일 03시 00분


그 남자는 말입니다.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합니다.

작정한 듯 멋을 내지 않지만 멋이 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고 좋은 것을 좋다 하고 슬플 때는 슬프다고 합니다. 센 척, 멋진 척, 잘난 척 하지 않습니다. 그럴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러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욕망이 없지는 않지만 온도가 매우 떨어져 뜨거운 열망 대신 따뜻한 소망 몇 개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릴 뿐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혹은 자신이 이뤄 낸 것들의 소중함을 진하고 깊게 알고 있어 혹시 상처를 내는 일을 하게 될까 봐 겁을 더럭 냅니다. 기념비적인 일을 이뤄 내는 수컷으로서의 욕심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작은 일에 기뻐하는 가족과 동료들의 얼굴에 더 욕심이 납니다.

숱이 줄어든 머리모양이 거울을 볼 때마다 얕은 한숨을 만들지만 그것도 세월이라 생각하니 낙담은 있으나 안달 같은 걱정은 없습니다. 몸이야 한창 때 같지는 않지만 조금 더 걸으면, 조금 덜 먹으면 된다고 위로하면 괜찮습니다. 젊은 남자들에게 있는 다양한 스펙과 자유자재의 외국어 구사력보다 낭만과 시대의식 위에 더께로 쌓인 경험과 여유가 조금은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상사이고 자식인 그는 이제 다른 이름을 얻었습니다. 제대하고 나서 듣던 ‘아저씨’ 소리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중년 남자’라는 타이틀입니다. 처음에는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괜찮아졌다고 합니다. 그 남자, 중년 남자가 나는 좋습니다.

우리가 알던 중년 남자들이 ‘달라졌다’

한국의 아줌마만큼이나 부끄러운 일화를 양산하던, 예를 들면 물수건으로 목과 발을 함께 닦고 이쑤시개 꽂은 채로 트림을 올리던 아저씨들이 할아버지가 된 이후 새로 중년 남자가 된 남자들은 그들이 직접 지켜보았던 인생의 선배들과는 꽤 다른 삶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먼저 그들은 성공한 직장인에서 성공한 어른으로 삶의 목적을 바꾸었다. 가화만사성은 아내의 몫이고 자신은 치국평천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직장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 믿었던 그들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아버지라는 타이틀과 진급한 직함을 바꾸기 싫었고 아내의 존경과 사랑대신 받은 사회적 명망이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학교에는 자모회만큼이나 활기를 띤 아버지 모임이 생겼고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는 남편으로 시장은 가득해졌다. 자기 관리가 직장에서의 평판은 물론, 가족 안에서도 의미 있는 덕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트레드밀이나 강변을 달렸고, 누가 챙겨 주기 전에 영양제를 갖춰 책상 위에 두었다.

옷 입는 즐거움, 그것에 대한 칭찬이 달콤하다는 것을 느낀 그들은 아내의 취향이 아닌 자신의 안목에 맞는 옷을 직접 쇼핑하는 데에도 시간과 돈을 쓰기 시작했다.

또 아내가 보는 드라마를 함께 보며 먼저 눈물이 나는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더는 이상 혼자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위에 사로잡혀 자신이 아닌 아버지, 남편, 상사로 사는 것보다는 오롯한 채로의 나의 삶 속에 그것들을 재편했다.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이런 중년 남자의 변화를 진료실에서 빈번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강함을 우겼던 사람들이 약함을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죠. 남자가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여자들이 훨씬 우월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워 강하다고 우기는 대신 현실 세계에서 조화를 택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는 현명한 세대인 것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남자 잡지의 활황으로도 대변된다. 2000년에 ‘에스콰이어’와 ‘지큐’가 전부이던 남자 잡지는 현재 10여 종에 달한다. 남성지 ‘루엘’의 문일완 편집장은 “초창기 남성지를 통해 기초 학습을 한 세대들이 함께 나이 들어 가며 고급스러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고 그것을 반영한 매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층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는 가르치려하지 않고 함께 향유하는 문화를 보여 주는 중이다. 이제는 겉모습뿐 아니라 그 겉 속에 쌓인 안까지 멋진 중년이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중년남자는 멋지다. 지금의 멋진 중년을 보고 자란 멋진 청년은 역시 그럴듯한 중년이 될 것이고 그 중년이 길러 낸 소년들도 그럴 것이다. 외양이 아니라 정서가 달라진 대한민국의 중년들, 충분히 매력적이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지독한 클리셰이지만 어쩐지 어울리는 BGM이다.

글: 조경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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