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이란… 사회전체에 봉사하는 공적 서비스”

  • 동아일보

한국사회학회지에 佛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미간행 연설문 게재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꼽히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1993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금메달을 받고서 찍은 사진. 당시 부르디외가 발표한 수상 연설문이 최근 발굴돼 ‘한국사회학’에 공개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제공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꼽히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1993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금메달을 받고서 찍은 사진. 당시 부르디외가 발표한 수상 연설문이 최근 발굴돼 ‘한국사회학’에 공개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제공
“여러분, 희망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사진)는 1993년 12월 7일 프랑스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국립과학연구원(CNRS) 금메달을 받는 자리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수상 연설을 마쳤다. 20세기 후반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중 한 명인 부르디외는 콜레주드프랑스와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를 지냈고 ‘재생산’ ‘구별 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등의 저서를 썼다.

그는 이 연설에서 1990년대 들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로 급변하는 환경에서 사회학이 학문적 도전을 받고 있지만 사회학이야말로 국가권력을 포함한 모든 권력의 전횡에 저항하는 대항권력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복잡한 사회세계가 존재한다. 사회학자들은 이 세계들의 기능장애를 분석하고 그 갈등을 보여줘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개인이나 집단에 소크라테스적 산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사회학회는 28일 출간하는 학회지 ‘한국사회학’ 제47집 제1호에 부르디외가 국립과학연구원 금메달을 수상할 때 발표한 5쪽 분량의 미간행 연설문을 번역해 싣는다. 이 원고는 그의 제자인 로이크 바캉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발굴해 ‘한국사회학’을 비롯한 13개 언어의 저널에 동시에 발표하게 됐다.

부르디외는 사회를 다양하게 분화된 장(場)으로 파악하고 인간을 그 장에서 행위하는 실천적 존재로 보았으며,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규정하는 상징과 문화의 힘에 주목했다. 그는 연설에서 사회학을 ‘공적 서비스’라고 정의하면서 “사회학이 발전하고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진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일반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부르디외는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한 번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내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하는 데 드는 1년 치 재정의 10∼20배에 해당할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사회학의 책무로 “이렇게 사악한 방식으로 학문을 활용해 시민과 소비자를 조작하고 기만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와해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고를 번역한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민주주의의 위기,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약화, 비판적 사회과학의 침체, 그리고 각종 사회병리현상 등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소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20년 전 부르디외의 글은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성찰할 필요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학회는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국사회과학자료원에서 특별세미나를 열어 이 원고를 소개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사회학#피에르 부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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