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 머금은 솔숲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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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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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화가 문봉선 ‘독야청청-千歲를 보다’전

중견화가 문봉선 씨의 ‘소나무-경주 삼릉 송림’은 실경의 소나무와 초서의 미학이 융합된 대작이다. 우듬지 부분을 생략한 채 서예의 획처럼 쭉쭉 뻗은 나무 둥치를 강조한 그림 속에 사실성과 추상성이 공존한다. 서울미술관 제공
중견화가 문봉선 씨의 ‘소나무-경주 삼릉 송림’은 실경의 소나무와 초서의 미학이 융합된 대작이다. 우듬지 부분을 생략한 채 서예의 획처럼 쭉쭉 뻗은 나무 둥치를 강조한 그림 속에 사실성과 추상성이 공존한다. 서울미술관 제공
《하늘 향해 곧게 자란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신산한 삶을 증명하듯 등 굽은 소나무도 보인다. 한쪽에는 해송과 설송, 다른 한쪽에는 쩡쩡한 기상으로 용솟음치는 솔숲과 희미한 안개 속에 숨어버린 솔숲도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화가 문봉선 씨(51)의 ‘독야청청-千歲를 보다’전은 이 땅에서 장수와 길상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소나무로 완성된 우주를 펼쳐낸다. 흔히 보는 소나무 그림과는 결이 좀 다르다. 나무껍질이나 부챗살 같은 솔잎을 치밀하게 묘사한 동양화의 관습에서 벗어나 기운찬 필획으로 쭉쭉 뻗은 나무 둥치로 현대 회화의 추상성을 녹여냈다. 꼼꼼한 사생을 기반으로 한 실경(實景)의 화폭에 초서(草書)의 필법을 교직한 결실이다. 내년 2월 17일까지. 02-395-0100》

‘독야청청…’전처럼 지필묵의 전통에 독창성과 실험정신을 보탠 또 다른 작가들의 개인전도 눈길을 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가 기획한 박상미 씨(36)의 ‘scene-場面’전(22일까지), 사간동의 ‘16번지’에서 열리는 최해리 씨(34)의 ‘It's gonna rain’전(30일까지)이다. 각기 한국화의 울타리를 넘어 전통과 파격을 가로지르는 혼성의 세계를 모색한 전시들이다.

○ 그림과 글씨의 혼융

문 씨는 일찍부터 소나무를 그려왔으나 세상엔 내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숲을 이루는 소나무부터 우뚝 나 홀로 선 소나무 등 이번 전시에선 길이 10m가 넘는 대작을 중심으로 20여 점이 공개됐다. 웅숭깊은 수묵의 솜씨와 서예 조형미학을 혼융한 작업이다.

서울미술관에 자리 잡은 수령 600년의 ‘천세송’을 비롯해 경주 강릉 산청 양산 등 전국 방방곡곡의 소나무를 사생한 뒤 그가 오랜 세월 갈고닦은 초서의 맛을 살려낸 그림들이다.

‘문봉선 소나무’의 개성은 나무의 우듬지 부분을 생략하고 제작한 소나무의 단체초상에서 두드러진다. 일필휘지, 단숨에 그은 듯한 굵은 나무 둥치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유화 붓을 사용한 그림, 고운 체로 걸러낸 쌀가루와 아교물을 섞어 화선지에 바르는 등 재료적 실험도 시도했다.

화가는 소나무의 몸이 아닌 정신적 힘을 그려내는 데 힘을 쏟았다. 한민족의 성품과 이 땅의 풍토를 녹여낸 소나무에서 꼿꼿한 기개와 절개, 기상이 흘러넘친다. 이주헌 관장은 “소나무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천천히 가고 소나무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보다 크고 너그럽다”며 “그의 작품은 소나무의 시간과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오는 영적 교감을 관객이 체험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통필법을 존중하면서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작가의 쉼 없는 정진이 엿보이는 전시다.

○ 전통과 동시대 미술의 만남

수묵과 채색을 결합한 박상미 씨의 그림(왼쪽)과 옛 그림과 도자기를 복제한 최해리 씨의 설치작품. 이화익갤러리 제공
수묵과 채색을 결합한 박상미 씨의 그림(왼쪽)과 옛 그림과 도자기를 복제한 최해리 씨의 설치작품. 이화익갤러리 제공
박상미, 최해리 씨의 전시는 한국화의 진화와 새 풍향을 가늠해보게 만든다. 전통의 맥락을 어떻게 동시대 미술과 연계할 것인지 성찰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전시들이다.

박 씨의 작품에는 차분한 수묵, 서구 감각의 대담한 원색과 색면 구성이 뒤섞여 있다. 식물의 무성한 이미지는 무채색 먹으로 은은하게 표현하고, 현대 건물의 지붕과 옥상 등은 빨강과 분홍 등 선명하게 채색했다. 내면의 감정을 풍경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질적 요소의 공존이 매혹적이다. 02-730-7818

최 씨의 작업은 보다 급진적이다. ‘모든 평면 위의 이동은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형태인데 이는 물리적 필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릴 것이다’ 등 작품 제목부터 특이하다.

그는 ‘복제’란 행위를 매개로 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데 가상 컬렉터의 소장품을 운반하다 좌초한 배가 후대에 발견됐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심사정의 옛 그림과 청화백자 등을 복제한 회화와 도자기로 박물관 진열장을 구성한 전시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02-2287-3516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독야청청-千歲를 보다#박상미#최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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