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영화, 식민지 조선을 달군 또 다른 불쏘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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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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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김승구 지음/288쪽·1만4800원·책과함께

조선인 거주지인 경성 북촌(서울 종로)의 단성사는 1920년대 대표적인 조선인 전용 영화관이었다. 책과함께 제공
조선인 거주지인 경성 북촌(서울 종로)의 단성사는 1920년대 대표적인 조선인 전용 영화관이었다. 책과함께 제공
“우마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던 의협아가 어찌 그 일문을 멸망케 한, 아니 동족을 유린한 로마의 강자와 타협하여 오직 한 주구를 배제함에 그칠 수가 있는가? 이것이 관중을 필연 실망케 하고 말 것이다.”(동아일보 1929년 1월 10일)

사회주의 계열 비평가였던 필명 ‘꽃이슬’이 프레드 니블로 감독의 할리우드 흑백영화 ‘벤허’(1925년)에 대해 쓴 영화평이다. 그는 주인공인 벤허가 예수를 만난 뒤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예수가 가르친 사랑이 참지 못할 바를 참게 했고, 용서해서는 안 될 억압자를 용서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영화평이 신문에 실릴 정도로 영화가 식민지 조선인에게 친숙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영화가 피억압 계층인 조선인이 ‘복수’를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1920년대 중후반 인기를 끈 영화인 ‘아리랑’과 ‘풍운아’도, 찰리 채플린 등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도 가난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이 억압자를 넘어선다는 내용이다.

올해 한국인 1억 명(누계) 이상이 본 영화는 대표적인 대중매체다. 세종대 국문과 교수이자 영화 애호가인 저자는 “이 땅에 영화가 뿌리를 내리고 민중과 함께 호흡한 것이 100년에 달한다”며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일간지와 잡지 등을 토대로 그 시절 영화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했는지 보여준다.

당시 대중도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다. 우월한 ‘스펙터클’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다. 찰리 채플린이 조선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을 신문에서 진지하게 다룰 정도였다.

이 책의 강점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를 받아들이는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당시 영화배우를 꿈꾸는 청년에게 기성세대는 “허영에 날뛰어 그러면 안 된다. 자기의 천품을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충고한다.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10대에게 지금 우리가 하는 충고와 같지 않은가.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조선#식민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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