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인류 뿌리찾기 완성한 3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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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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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진화, 뜨거운 주제들- ‘호모 하빌리스, 루돌펜시스’ 발굴한 가족

루이스 리키. 출처 위키피디아
루이스 리키. 출처 위키피디아
《 오늘은 고인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놀랍게도 3대에 걸쳐 화석을 발굴하고 연구해 온 일가족이지요. 하지만 가족 이야기가 다가 아닙니다. 이들이 50년에 걸쳐 이어 간, 우리 인류의 뿌리를 찾기 위한 길고 지난한 이야기입니다. 》
○ ‘손 쓴 인간’ 찾아낸 1세대 루이스 리키 부부

시작은 1960년대로 올라갑니다. 당시 케냐에서 왕성하게 발굴을 하던 고인류학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바로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 박사였죠. 루이스 리키는 케냐에 파견된 영국인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진화론을 신봉해 인류학자의 길을 걸었던 인물입니다.

리키 부부는 우리 인류가 속한 호모 속(호모 사피엔스의 친척을 모두 일컬음. 속은 종의 상위 개념)의 기원을 밝힐 화석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고인류 화석으로는 남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동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베이징인’, ‘자바인’ 등)가 대표적이었습니다.

리키 부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는 나중에 생겼고, 호모 에렉투스보다는 원시적인 종이 최초의 호모 속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960년대 내내 열심히 발굴을 한 리키 부부는 눈부신 성과를 냈습니다. 우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남아프리카뿐 아니라 동아프리카에서도 번성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유명한 ‘화산재 위의 두 발자국’ 유적을 발견해, 인류가 직립보행을 한 것이 기존 추정(70만 년 전·‘곧선사람’인 호모 에렉투스 시대)보다 훨씬 전인 330만 년 전이라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인류의 ‘친척’ 종 중 하나로 큰 치아로 식물 껍질이나 뿌리를 먹었던 ‘파란트로푸스(당시에는 ‘진잔트로푸스’라고 불렀음) 보이세이’의 대표적인 두개골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고인류학 역사의 이정표가 된 발견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열망하던 호모 속의 기원은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탄자니아의 올두바이에서 손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리키 부부는 이 손뼈에서 도구를 만드는 손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최초의 호모 속 화석이 되기에 충분한 특징이었지요. 그래서 ‘손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온전한 화석 발굴한 2세대 리처드 리키

하지만 리키 부부의 열망이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류 화석은 대부분 두개골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여 왔습니다. 따라서 도구를 만들 만큼 큰 두개골을 가진 화석이 나와야 했죠. 다행히 화석이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파편만 나오고, 완전한 형태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경험 많은 고인류학자라도 두개골 파편만 가지고는 전체 크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1972년 진짜로 쓸 만한 두개골이 케냐 북부의 쿠비포라에서 발굴됐습니다. 이 화석을 발굴한 것도 리키 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와 메리 부부가 아닌, 아들 리처드였습니다. 리처드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발굴 현장을 따라다녔는데, 이미 부모 못지않은 열정과 자질로 세계적인 고인류학자가 돼 있었습니다.

발견된 화석은 루이스 리키 부부의 예상대로 두뇌 용량이 크고 위로 곧게 선 이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호모 하빌리스는 명실상부한 최초의 호모 속 인류가 되는 듯했습니다(사실 이 화석의 미간과 콧등 사이는 부러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마의 각도는 추정한 것이란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발굴된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나중에 죽 늘어놓고 보니 모습이 각양각색이었던 것입니다. 호모 하빌리스는 ‘천의 얼굴’을 가진 인류였습니다. 하나의 종으로 부르기가 어려울 만큼 다양한 화석이 하나의 종 이름 아래에 모여 있었습니다.

리처드 리키가 발견한 두개골 화석 역시 다른 어떤 화석과도 다른 형태였습니다. 최초로 발굴된 완전한 호모 하빌리스 두개골 화석이 오히려 가장 이상한 예외가 되자, 학자들은 머리를 갸우뚱했습니다.

학자들은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이 화석들을 모두 같은 종(호모 하빌리스)으로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두 개 이상의 다른 종이니 다시 분류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었습니다.

○ 3세대 손녀가 밝힌 ‘이상한 화석’의 비밀

리처드 리키는 1990년대 이후 환경보호와 정치에 뜻을 두고 발굴 현장에서 멀어졌습니다. 코뿔소 보호 운동을 하다 1993년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은 뒤로는 현장에서 완전히 떠났지요. 하지만 리키 가족의 발굴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8∼2009년, 쿠비포라에서 또 다른 두개골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코를 중심으로 한 얼굴뼈와 아래턱 뼈 두 점입니다. 관련된 논문이 올해 8월 초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렸습니다. 논문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이 화석이 1970년대에 리처드 리키가 발견했던 화석과 아주 흡사한, 같은 종이란 것입니다. 리처드의 화석은 더는 ‘혼자 튀는’ 이상한 화석이 아니었습니다.

이 화석은 호모 루돌펜시스로 분류됐습니다. 호모 하빌리스가 살던 시절 복수의 인류가 함께 존재했다고 주장하던 학자들이 머리가 큰 개체들에 붙였던 이름이지요. 결과적으로 초기 호모 속의 인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인류 진화가 한 종이 멸종하고 다른 종이 나타나는 ‘단선적인’ 형태로 이뤄져 왔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제 40년에 걸친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와 별개로, 이 발굴과 연구를 이끈 연구자의 이름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미브 리키와 루이즈 리키. 각각 리처드 리키의 아내와 딸의 이름입니다. 3대로 이어진 이들의 연구가, 남편이자 아버지가 발굴한 화석의 운명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과학동아’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동시 연재됩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   
정리=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고인류학#루이스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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