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中 첫 노벨 문학상 모옌 “글 쓸때 난 공산당원이 아니다… 작가의 양심으로 쓸 뿐”
동아일보
입력 2012-10-16 03:00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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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부 인사 논란’ 中 첫 노벨 문학상 모옌 인터뷰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모옌 씨가 15일 중국 산둥 성 가오미 시 자택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본보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가오미=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공산당원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저 작가로서 양심에 따라 쓸 뿐이다.”
중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모옌(莫言·57·본명 관모예·管謨業)은 15일 산둥(山東) 성 가오미(高密) 시 자택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옌이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주색 체육복을 걸친 편안한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면서 ‘친정부 인사’라는 일부의 지적을 적극 반박했다.
모옌은 특히 사회주의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종교에 대해 “종교가 사회를 지탱하는 지주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 같은 종교관을 밝힌 건 매우 이례적이다.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먼저 서로의 발전을 말하고 나중에 문제를 해결하자’고 조언했다.
―올해 노벨상을 탈 것으로 예상했나.
“금년에 상을 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세계의 우수한 작가들이 나보다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나. 한국의 고은, 황석영 선생 등은 매우 뛰어난 작가다. 그들 역시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고 다른 작가들도 그 수준에 와 있다.”
―당신의 필명인 모옌은 ‘말이 없다’인가, ‘말을 안 하겠다’인가.
“필명은 스스로를 각성시키는 것이다. 적게 말하고 일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정치가나 연설가다. 작가의 임무는 입이 아닌 글로 말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말을 많이 한다고 부친이 호통을 쳐 필명을 그렇게 지었다는 말도 있던데….
“당시 중국은 비정상이었다. 계급투쟁이니 정치운동이니 해서 말을 함부로 하면 (자아비판 등) 큰 곤경에 처했다. 농민이었던 우리 부모는 비교적 진중했다. 나한테 밖에 나가서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잘못하면 그분들께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나. 내가 커서도 다소 말이 많긴 했는데 그건 강의나 발표회 참석 때문이다. 내 필명이 주는 의미와는 관계가 없다.”
―특히 농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게 된 경위는 무언가.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그가 잘 아는 사실과 기억으로 구성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많은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농촌을 쓰느냐, 도시 문제를 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쓰는 것이다. 나는 문학작품이란 사람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의 영혼, 감정, 성격을 써야 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에서 전장은 물론이고 농촌, 모스크바의 궁전 등을 배경으로 해 사람의 모든 면을 반영하려고 했지 않나.”
―작가인 당신이 공산당원이라는 점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는데….
“글을 쓰기 전인 1979년 군에 있을 때 입당했다. 중국의 공산당원은 8000만 명이 넘는다. 내가 작업을 할 때 공산당원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글을 쓸 때는 그냥 한 사람의 작가일 뿐이다. 작가의 양심에 따라 작품 활동을 한다.”
―소설 ‘생사피로(生死疲勞)’에서 불교 관련 얘기가 많이 나온다. 당신은 공산당원이면서 혹시 불교신자이기도 하나.
“나는 종교를 존경한다. 하지만 특정 종교를 신봉하진 않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 조예가 깊진 않지만 불교나 기독교 모두 넓고 깊은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핵심 가치는 인간에 대한 관용과 향선(向善·선을 지향)이며 사회가 매우 필요로 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고 본다. 나는 전쟁을 찬양하고 격려하는 종교를 보지 못했다.”
―당신의 고향인 가오미 시 다란(大欄) 마을에 가보면 지금도 ‘계획생육(인구조절 정책)’ 관련 표어가 곳곳에 붙어 있다. 당신은 소설 ‘개구리(蛙)’에서 계획생육을 비판했지만 아직 변화가 없다. 작가는 작품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중국에서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문학작품은 분명히 사회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개별 작품으로 사회를 움직일 수는 없다. 더욱이 소설은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사회문제 선언서’가 아니다. 그런 것을 요구하는 건 지나친 것이다.”
―최근 본인의 문학이 정치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문학과 정치는 복잡한 관계에 있고, 특히 신(新)중국에서는 더욱 그래 왔다. 초기에는 문학이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문학이 정치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작가가 개인의 생각에 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에게 지나친 정치성을 요구하는 것은 작품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인간의 내심은 정치와 당파, 계급성과 무관한 많은 면을 내포하고 있다. ‘공산당원이 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남자가 미녀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모옌은 정부 편향적 작가라는 비판도 받지만 본인은 정부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경향도 보인다. 14일 관영 중국중앙(CC)TV와의 인터뷰에서 앵커가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 심드렁한 표정으로 “걱정도 많고 한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라고 답한 게 화제가 되고 있다. CCTV가 벌이고 있는 ‘행복 캠페인’에 중국 최고의 뉴스메이커가 별 관심이 없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지만 고구려 역사나 이어도 귀속 문제 등 현안이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웃한 국가의 문제는 이웃한 개인의 문제와 똑같다. 항상 이런저런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논란은 잠시 내버려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먼저 우의와 발전을 말한 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하면 해결 방법이 나올 것이다.”
모옌은 다음 작품으로 소설이 아닌 중국의 신화를 담은 극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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