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100년을 꿰뚫는 시선(詩選)이 나왔다. 윤동주 한용운 김소월 등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부터 최근 문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작가들까지 한국 시사 100년을 100권의 시집으로 묶는 ‘한국대표 명시선 100’(시인생각)이다.
1차분으로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용운 ‘님의 침묵’, 김남조 ‘가슴들아 쉬자’, 신달자 ‘너를 위한 노래’, 도종환의 ‘담쟁이’ 등 5권이 나왔다. 김소월 서정주 정지용 노천명 박재삼 천상병 정진규 오세영 김영랑 등의 시선집이 이달 중 출간되며, 앞으로 1년 안에 나머지 시집들이 나온다.
시집 한 권에는 50편이 넘는 시가 실리는데 작고 문인의 경우 출판사가 작품을 선별했다. 생존 시인은 시인이 직접 대표시들을 골랐다. 더 폭넓은 한국 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한국 시단의 한 축인 시조 시인(정인보 이은상 이호우 김상옥 등)의 작품도 추가한다.
이 시선에는 한 가지 이채로운 점이 있다. 시선에 응당 붙어야 할 시집 일련번호가 빠져있는 것. 시선의 ‘얼굴’격인 1호를 포함해 번호 선정을 놓고 출판사는 많은 고민을 했다. 현대시 100년을 조명하는 시선의 1호가 ‘1등’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단 경력이 빠른 순으로 번호를 매기자’는 대안도 제시됐다. 이렇게 따지면 1908년 잡지 ‘소년’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은 육당 최남선이 1호가 된다.
하지만 등단 순으로 번호를 매기면 문제가 생긴다. 채택된 문인 100명 가운데 작고 문인만 40명이 넘어 현재 활동하는 문인들은 내년에나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시선 초반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작고 문인과 생존 문인들을 섞어서 펴내게 됐고, 일련번호 없이 ‘무순’으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번호가 없다면 시집이 쌓일수록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출판사는 100권의 출간을 완료한 뒤 일련번호를 매길 예정이다. 이근배 시인생각 주간은 “101권부터는 출간 순서로 번호가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의 경우엔 어떻게 시집 번호를 매길까. 시선을 펴내는 문학과지성사, 창비, 실천문학사 등은 신작 시집을 다루므로 자연스럽게 출간 순으로 번호를 매긴다. 100호, 200호 등 끊어지는 특별한 호수는 기념 시집으로 꾸린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편집부장은 “출판사나 시인들이 시집 번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101호 등 새 100번대를 시작하거나 199호 등으로 마침표를 찍는 책들은 시선의 줄기에 맞거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집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최동호 서정시학 주간은 “일부 시인들은 백팔번뇌를 뜻하는 108호 등 특정 번호를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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