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동 교수는 “헤밍웨이의 소설은 단순해 보이지만 심층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작가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욱동 교수 제공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책이 올해 잇따라 출간됐다. 사후 50년인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난해 말 끝났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 헤밍웨이 번역자로 꼽히는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 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학과 교수(64)가 최근 헤밍웨이 설명서라 할 만한 ‘헤밍웨이를 위하여’(이숲·사진)를 펴냈다. 헤밍웨이의 삶과 대표작을 1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밀도 있게 소개했다.
김 교수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헤밍웨이의 삶을 알지 않고는 그의 작품 속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모두 그의 파란만장했던 개인사, 특히 화려한 여성 편력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여주인공 캐서린은 헤밍웨이의 첫 사랑인 쿠로스키가 모델이지요.”
그는 헤밍웨이에 대해 “삶의 정수를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게 표현하는 작가”라고 요약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고 믿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아름답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은 삶이어도 최선을 다해 산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자살했다. 왜 그랬을까. 김 교수는 “그의 삶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헤밍웨이는 ‘인간의 관심사가 건강과 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즐기는 것’이라고 말해왔어요. 하지만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말년의 헤밍웨이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도 할 수 없었죠. 특히 더이상 작품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김 교수는 헤밍웨이 특유의 건조하고 간결한 하드보일드(hard-boiled) 문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감정을 헤프게 드러내지 않고도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소설은 건축물이다. 그런데 (화려한) 바로크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소설은 건축에 빗대 말하자면 명동성당이 아니라 63빌딩입니다. 화려함을 걷어낸 모더니즘 양식을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는 조국인 미국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살았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그랬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선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무기여 잘 있거라’에선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우는 미국인 청년이 나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선 스페인 내전 중 자유수호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에는 멕시코 만에 사는 쿠바인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헤밍웨이야말로 ‘지구촌 작가’입니다. 그의 정신은 국제화, 다문화 시대를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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