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男들보다 손 큰 女心을 파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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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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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독자 62%가 여성… ‘이야미스-코지 미스터리’ 장르도 생겨”

블루엘리펀트 제공
블루엘리펀트 제공
《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사치코, 나이는 41세. 8년 전 이혼하고 고교생 아들과 산다. 겉보기에 평범한 주부인 그는 전남편의 재혼 상대가 데리고 왔던 10대 딸의 남자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느 날 사치코의 아들이 사라진다. 지난달 출간된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블루엘리펀트)의 내용이다. 실종 사건을 파헤친 이 작품은 사건 발생과 수사의 전개 과정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심리 묘사가 작품의 주를 이룬다. 잔인한 범행 장면은 없지만 끝 모르게 추악해지는 인간 본능의 민낯이 독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
여류 소설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9월이…’는 지난해 일본에서 64만 부가 판매되며 30, 40대 여성 사이에서 ‘이야미스’ 열풍을 일으켰다. 이야미스는 ‘싫은’ ‘이상한’ ‘묘한’이라는 뜻의 ‘이야나’와 ‘미스터리’를 조합한 신조어. 말 그대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미스터리를 뜻한다. 한국어 번역본도 발매 2주 만에 초판 3000부가 다 판매돼 2쇄를 찍기 시작했다.

추리물을 찾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여성 취향의 추리소설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독자적인 장르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야미스도 대표적인 여성용 추리소설 장르로 꼽힌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추리소설 분야에서 여성 독자의 비중은 2005년 56%에서 올 상반기엔 62%로 늘어났다.

여성용 추리물은 남성이 주 독자층인 일반 추리물과 달리 여성 작가가 쓴 경우가 대부분이고 논리적인 추론보다 인간관계에 방점을 둔다.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묘사도 적은 편이다. 윤영천 하우 미스터리 편집장은 “남성은 추리소설을 읽을 때 구조를 살피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데 관심을 두지만, 여성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 읽기 때문에 심리 묘사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잔혹한 살인이나 성폭행 장면을 싫어하는 이유도 소설 속 사건을 대상화해 바라보는 남성 독자와 달리 여성들은 피해자의 처지에서 소설을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이야미스 소설가인 여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비채, 2009년)은 중학생들의 계획적 살인에 어린 딸을 잃은 여교사 유코가 종업식 날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 후 범인들에게 가혹한 복수를 한다는 내용. 지난해 동명의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됐다.

미스터리 소설가인 조영주 씨(33)는 “이야미스 소설은 여성이 주체가 돼 자신의 감정을 파고드는데, 그 안에서 느껴지는 허무감이 현대 여성의 그것과 비슷하다”며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야미스와 달리 ‘편안한’ 분위기의 ‘코지 미스터리’는 10, 20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추리물이다. 탐정이나 형사 대신 찻집 주인 같은 평범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기 마을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 코지 미스터리물인 ‘악마의 케이크 살인사건’(2011년) 등을 출간한 이경선 해문출판사 대표는 “코지 미스터리 역시 잔혹한 묘사나 정교한 트릭보다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문학#추리소설#여성용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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