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Bucket List Tour]<끝>지상최고 휴양섬 타히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3일 03시 00분


고갱도 반한 타히티의 색채, 원시의 자유를 부른다

타히티 섬 비너스포인트의 일상적인 오후 풍경. 토플리스차림으로 검모래 해변에서 일광욕하는 사람들 뒤로 현지 프랑스인들의 전원주택이 보인다.
타히티 섬 비너스포인트의 일상적인 오후 풍경. 토플리스차림으로 검모래 해변에서 일광욕하는 사람들 뒤로 현지 프랑스인들의 전원주택이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을 골라 소개해온 버킷리스트투어 시리즈. 그 마지막 여행지를 공개한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프렌치폴리네시아다. 우리에겐 ‘타히티’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1903)이 홀로 그림을 그리다 숨진 바로 그곳이다. 이미 소개한 다섯 곳은 버킷리스트로 손꼽아 손색이 없다고 확신한 곳이다. 그래서 연재 시작 때부터 공개했다. 그러나 마지막 여섯 번째만큼은 처음부터 비워 두었다. 애초 타히티를 염두에 두었지만 연재하는 동안에 혹시 더 멋진 곳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기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 고갱과 러브어페어를 불러들인 섬


타히티라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워런 비티와 아넷 베닝이 주연한 영화 ‘러브어페어’부터 떠올린다.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비상착륙을 하자 승객 전원은 여객선에 옮겨 타고 인근 섬으로 옮겨 가는데 이 과정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일생에 한번쯤 운명처럼 다가오는 사랑. 그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무대로 내가 봐도 타히티만 한 곳이 없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선택은 완벽했다.

고갱도 그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13년간이나 타히티에 머물며 여과 없이 쏟아지는 순수한 자연의 색채를 화폭에 담다가 거기서 숨을 거둬서다. 그런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원시의 자연, 타히티와 동일시된다. ‘전원에 널려 있는 눈부신 모든 것이 나를 눈멀게 만들었다.’ 1891년 6월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은 이 말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색채에 대해 좀처럼 확신을 갖지 못했던 고갱. 그런 그에게 63일의 긴 항해 끝에 어렵사리 찾아온 그곳은 자신의 눈을 멀게 할 만큼 완벽한 원시의 색채를 선사했다. 그래서 그는 섬을 떠날 수 없었고 1903년 프렌치폴리네시아 마르키즈 제도의 한 섬에서 홀로 외롭게 숨을 거둘 때까지 거기서 자연의 색채를 담아 자신을 표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 타히티는 어떤 곳이었을까. 벌써 서너 차례 다녀왔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처음 찾았던 10년 전.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본 오사카에서 오른 에어타히티누이 항공의 A340-300기가 타히티에 착륙한 건 11시간 30분의 길고 긴 밤 비행을 마친 오전 8시경. 촉촉한 아침 공기로 파란 하늘이 더더욱 싱그러워 보이던 타히티 섬 파페에테(수도)의 파아아 공항에서 항공기의 트랩을 내려서는데 자그만 터미널 앞에서 까무잡잡한 피부에 꽃무늬 원피스를 걸친 키가 훤칠하고 생머리를 늘어뜨린 매력적인 원주민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하얀 치자 꽃으로 엮어 만든 레이(꽃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다. 그때 그 치자 꽃향기가 어찌나 상큼하고 좋던지…. 열대 섬의 수수한 공항터미널에서는 입국 수속을 하느라 줄을 서서 기다리던 20분 내내 원주민 남성 트리오가 기타와 우쿨렐레로 흥겨운 민속음악을 연주했다.

사실 이런 비슷한 분위기는 타히티가 아니라도 체험할 수 있다. 하와이 혹은 동남아의 열대 섬에서도 비슷하게 흉내 내서다. 하지만 거기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공항을 나와서도, 아니 여행하는 내내 이런 소박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가 계속되느냐다. 대부분은 터미널만 나서면 복잡한 도심이 펼쳐지고 매연과 소음이 코와 귀를 괴롭힌다. 하지만 타히티는 그렇지가 않다. 프렌치폴리네시아의 가장 큰 섬 타히티의 파페에테에서는 시내조차도 리조트 타운의 한가로움이 지배해서다. 그래서 여기선 누구든 휴식의 섬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런 만큼 타히티에서 휴식은 그 순도가 다른 어떤 곳보다도 높다고 말할 수 있다.

○ 산과 바다, 라군과 리조트의 앙상블

보라보라섬을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 하늘색의 해변 앞바다가 산호초에 의해 형성된 라군이며 멀리 하얀선이 환초에 부서진 파도다. 라군을 수놓고 있는 트로피컬샬레가 오버워터코티지라는 수상 방갈로다(외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타히티섬의 원주민인 폴리네시안여인. 머리에 치장한 하얀꽃이 치자꽃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관광청 제공
보라보라섬을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 하늘색의 해변 앞바다가 산호초에 의해 형성된 라군이며 멀리 하얀선이 환초에 부서진 파도다. 라군을 수놓고 있는 트로피컬샬레가 오버워터코티지라는 수상 방갈로다(외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타히티섬의 원주민인 폴리네시안여인. 머리에 치장한 하얀꽃이 치자꽃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관광청 제공
진정으로 휴식을 선사하는 바다 휴양지라면 최소한 이런 조건은 갖춰야 한다. 첫째는 섬이어야 하고 둘째는 그 섬이 산악지형이라야 하며 셋째는 라군(lagoon) 해안으로 둘러싸여야 하고 넷째는 원주민이 친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스스로 터득한 체험에서 나온 기준이다. 현대인의 휴식은 ‘도심 탈출’의 성격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립’된 자연을 선호하는데 바다에서 섬이 대세를 이루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섬이 산악지형이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산은 그 자체가 ‘그린(Green)’이다. 뜨거운 태양과 투명한 하늘, 파란 바다도 초록의 산이 없다면 그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게다가 산이 있으면 비도 자주 내리고 물도 풍부해 비록 열대 섬이라도 공기가 촉촉하다. 게다가 산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섬은 사방팔방으로 풍경의 변화가 없다. 이런 곳에선 하루만 지내도 따분해서 조갑증이 난다. 하와이와 몰디브는 좋은 예다. 두 섬은 지형이 정반대다. 하와이는 화산섬으로 험준한 산악이 섬의 자연을 형성하고 있다. 물도 풍부하다. 반면 모투(산호로 이뤄진 작은 섬)지형이라 평지를 이룬 몰디브는 산이 없다. 그래서 어디를 봐도 하늘과 바다뿐이다. 이런 곳에선 하루만 지내도 탈출하고 싶은 답답함을 느낀다.

‘라군’이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다. 파도를 막아 주는 환초(섬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싼 산호)가 섬을 에두르고 있어서다. 라군의 바다는 파도가 없으니 레저 활동을 하기에 좋고 수중은 산호로 인해 해양생물의 보고다. 타히티는 화산섬이면서도 산호가 발달했다. 그래서 대부분 리조트는 라군에 자리 잡았다. 그 라군에는 수상가옥 형태의 오버워터 코티지(Over-water cottage)가 많다. 물 위에서 잠을 자는 격인데 이런 리조트 건축의 효시가 바로 여기 타히티다.

마지막으로 원주민은 여행지의 인상을 가장 깊게 지어주는 요소다. 여행 중에 사람과의 교감만큼 기억이 오래가는 게 없기 때문이다. 타히티 주민은 태평양의 섬에만 살아온 폴리네시아인이다. 하와이 통가 뉴질랜드 주민도 모두 폴리네시아인이다. 카누 하나로 수천 km 바다를 정복할 만큼 터프하고 덩치도 크지만 아름다운 미소와 노래, 친절함과 순박함으로 사람을 끄는 다정다감한 민족이다.

해넘이 풍경은 세상 곳곳 모두 다르다. 그중 최고는 어딜까. 내 경험에 비춰볼 때 타히티 섬에서 모오레아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을이었다. 모오레아 섬은 타히티 섬과 불과 15k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마치 고성(古城) 같다’는 고갱의 말 그대로 산봉우리가 드라마틱하게 치솟은 멋진 경관을 지녔다. 그 섬의 산악은 해질녘이면 그 섬 너머로 지는 저녁 해로 인해 실루엣으로 변하고 그 배경의 하늘은 이내 핏빛으로 물든 채 빨갛게 타오른다. 그러면 타히티 섬의 리조트에서는 열 명, 스무 명이 함께 젓는 대형 카누를 띄운다. 노를 젓는 이는 모두 관광객. 이들은 모오레아 섬을 향해, 아니 붉게 물든 바다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어 나아간다. 그런 다음에는 카누를 세우고는 차갑게 냉장된 ‘히나노’(로컬 브랜드 맥주) 캔을 꺼내 바다 위에서 하늘 높이 들고는 건배를 외친다. 타히티에서는 해질녘 바다조차도 석양 속으로 힘차게 돌진하는 수많은 카누로 인해 원시의 생명력이 충만하다.

○ 노출이 자연스러운 비너스포인트

이 섬은 폴리네시아인이 3000년 이상 살아온 땅이다. 그 섬이 프랑스에 점령당한 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완전 합병은 1888년)다. 타히티에는 섬이 118개나 된다. 이 섬은 다섯 개의 섬 군(群·아키펠라고)으로 나뉘는데 그 전체 영토(섬+바다)는 엄청난 규모다.

프랑스인에게 프렌치폴리네시아는 남태평양에 새로이 건설한 ‘뉴 프랑스’다. 고갱이 타히티를 찾은 것은 그 덕분. 애초에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파리 만국박람회(1889년)의 ‘식민지관’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자바 섬 원주민의 춤과 원색 의상이었다. 비로소 자신이 찾던 것이 이런 ‘문명 이전의 역사로 회귀’라는 데 눈을 뜬 고갱은 그걸 찾아 나섰다가 2년 후 베르사유 항에서 타히티행에 오르게 된다. 4년 반이나 지속해온 반 고흐와의 교우에 마침표를 찍고 홀연히.

타히티에서는 모든 게 프랑스풍이다. 언어도, 글씨도, 문화도, 휴식까지도. 타히티 섬의 파페에테 시내를 오가는 대중교통수단인 트럭을 보자. 프랑스어 발음으로 ‘르 트뤼크(Le Truck)’라고 부른다. 슈퍼마켓도 프랑스 체인인 ‘카르푸’다. 식당도 프렌치레스토랑이 많고 거기엔 프랑스산 와인은 물론이고 각국의 와인이 즐비하다. 시내 항구의 공원에 밤마다 서는 트럭 포장마차촌도 ‘룰로트(Roulotte)’라는 프랑스어다. 물론 대부분 비즈니스도 프랑스인의 몫이라 프랑스인은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 타히티의 프랑스풍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비너스포인트’라는 해변이다. 프렌치폴리네시아의 프랑스인들이 즐겨 찾는 검은 모래 해변인데 초록의 산등성에 들어선 별장 같은 저택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비치다. 이곳엔 평소에도 모래밭에 타월을 깔고 누워 태닝을 하거나 책을 읽는 프랑스 여인이 많은데 지중해의 리비에라 해안처럼 상당수가 토플리스(비키니의 상의를 벗어 던진 차림)다. 더 놀라운 건 외부 사람이 다가가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인데 이미 섬의 평화로움에 젖어 든 덕분이리라.

멋진 흑진주 보석에서도 프랑스는 숨쉰다. 이곳은 세계적인 흑진주 산지로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한 일본 미키모토사도 여기서 진주를 양식 생산하고 있다. 이 흑진주는 여기서 세팅돼 관광객에게 판매되는데 프랑스의 감각과 디자인으로 인기가 높다.


타히티=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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