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당신은 정보의 바다서 진주를 건져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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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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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의 시대/사사키 도시나오 지음·한석주 옮김/286쪽·1만6000원·민음사

미디어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체크인하는 행위다. 인터넷의 파편화된 정보에 ‘관점’을 제공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을 영미권에서는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미디어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체크인하는 행위다. 인터넷의 파편화된 정보에 ‘관점’을 제공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을 영미권에서는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콘텐츠가 왕인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큐레이션의 시대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는 홍수처럼 흐른다.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페 등 정보가 공유되는 권역도 점점 세분된다. 정보의 질 자체는 분명 예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어디서 정보를 찾을지 깜깜하다. 내가 원하는 정보가 유통되는 경로를 정확히 겨냥해 찾을 수만 있다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엄청난 기회를 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텐데 말이다.

일본의 정보기술(IT)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자책의 충격’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등을 통해 미디어가 격변하는 사회상을 날카롭게 비평해왔다. 이 책은 지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에, 가치 있고 정제된 정보를 찾는 등대와 같은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를 비오톱(biotop)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를 합친 말로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다양한 종의 생물로 구성된 생식(生息·살아 숨쉬는)공간’이란 뜻이다.

매스미디어 시대에 비오톱은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었으나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디지털 공간 안과 밖으로 무한대로 뻗어나가게 됐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영화와 음악계는 엄청난 콘텐츠 버블과 쇠퇴를 경험했다. 비디오테이프, CD플레이어, DVD플레이어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콘텐츠 유통구조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세분된 정보유통 구조를 가진 인터넷이 등장하자 음악, 영화산업의 대량소비 모델은 급격히 거품이 꺼졌다.

저자는 “문제는 불법 다운로드가 아니다. 콘텐츠업계는 핀포인트로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을 사람들의 비오톱을 찾아내 그곳에 정보를 전달하는 정밀한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대량소비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제 정보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전달된다”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가치관이나 흥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연결된다. 개인도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일 뿐이다. 트위터는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시되는 세계다. 기업이 공식계정을 통해 무미건조한 공식 코멘트 같은 트윗만 올린다면 손님이 몰리지 않는다. 140자 안에 따뜻한 인간적 존재가 느껴지는 계정에는 수많은 팔로어가 따른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정보의 신뢰도’보다 전달하는 ‘사람의 신뢰도’를 찾는 게 빠른 길이다. 큐레이터는 본래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학예사’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 영미권의 웹에서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단편적인 정보에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어내는 사람도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트위터에서 다른 사람을 팔로한다는 것은 다른 큐레이터의 ‘관점’을 얻는 것이다. 미술에서의 큐레이션과 다르게 소셜미디어에서의 큐레이션은 무수한 큐레이터와 무수한 맥락에 의해 재구성되기 때문에 신선함을 유지한다.

저자는 “‘내가 찾는 정보’와 ‘다른 사람의 관점’에 의해 주어진 정보가 부딪치면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세렌디피티’란 ‘자신이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발견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책 곳곳에는 컴퓨터뿐 아니라 음악 미술 철학에까지 뻗은 저자의 깊은 지식이 드러난다. ‘클라우드(cloud)’와 ‘공유(share)’를 동양의 ‘청빈사상(淸貧思想)’에 비유하고, ‘주객일체(主客一體)’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로 인터넷의 댓글 놀이와 상호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할 만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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