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cm의 훤칠한 키에 기품 있는 자태가 당당하고 의젓하다. 전면을 대나무로 장식한 조선시대 3층 책장. 대감 집에서 애지중지했을 법한, 견실한 기능과 은은한 멋이 어우러진 명품이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민예관의 개관전 ‘조선목기, 그 아름다움-권옥연 소장품’전은 옛것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한 목기 마니아의 수집품을 선보인 자리다. 김환기 서세옥 등과 함께 목기에 관한 ‘당대의 안목’으로 꼽혔던 화가 권옥연(1923∼2011)의 소장품으로 재구성한 전시는 사랑방가구와 부엌세간까지 우리 정서와 미학을 보여준다(5월 10일까지·02-766-8402). 》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민예관의 개관전 ‘조선목기, 그 아름다움-권옥연 소장품’전에 선보인 조선시대 3층 책장. 세련되면서도 치장에 기울지 않고 치밀한 짜임새와 균형미를 담아낸 목가구 디자인에서 전통적이면서 현대적 미감이 드러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기획한 ‘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전도 손때 묻은 가구와 용품을 소개한다. 한국과 서양의 생활 디자인 가구와 일상용품을 모으는 빈티지 컬렉터 12명의 수집품을 소개한 전시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디자인을 접할 수 있다(5월 6일까지·02-720-5114).
두 전시는 국내외 생활용품의 디자인 미학을 소개하는 전시들이다. 이들과 함께 ‘노르딕 데이’전(KF문화센터 갤러리) ‘핀란드 디자인’전(한가람디자인미술관), ‘스위스 디자인 어워즈’전(상상마당 갤러리) ‘선의 아름다움-현대가구의 시작’전(경기도 미술관) 등도 그릇부터 패션까지 디자인의 미학을 살펴보면서, 빠르게 사서 빠르게 버리는 오늘의 소비사회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준다.
○ 옛것의 새로움
권옥연 화백이 태어난 함흥의 명문가 권 진사 댁은 추사 김정희가 함흥에 오면 꼭 찾을 만큼 예술적 취향으로 명성 높았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눈을 키운 그의 컬렉션은 경상(經床) 등 세련미와 쓰임새가 조화를 이룬 기물로 선인의 생활미학을 드러낸다. 시간의 윤기를 담은 전통 목가구의 디자인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목기의 선과 비례, 형태에 스며 있는 ‘한국의 미’는 불필요한 치장은 덜어내고 삶의 질서를 추구한 선인의 마음자리를 엿보게 한다. 그와 함께 목기 수집가로 유명한 김종학 화백은 도록 서문에서 “권 선생님은 귀족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좋아하셨고, 난 단순하고 현대감각이 있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것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도갤러리에서도 6일까지 다양한 목기를 볼 수 있다.
금호미술관 전시에선 김명한 aA디자인미술관 대표를 비롯해 김효진 사보 이종명 씨 등 내로라하는 컬렉터의 수집품을 보여준다. 긴 세월 동안 다져온 안목과 열정을 바탕으로 수집한 낡은 가구와 용품들이 미술관에서 새롭게 빛을 발한다. 1950, 60년대 장과 서랍으로 자연스럽게 연출한 영국의 서민가정(김명한), 1920, 30년대 프랑스에서 대량 생산된 톨릭스 철제의자와 테이블로 재현한 카페(구자영), 오디오 컬렉션(마영범), 빈티지 오브제를 재활용해 만든 조명기구(배상필)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낡은 물건의 가치를 알리고 순환을 돕기 위해 집에서 잠자는 용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벼룩시장 이벤트도 주말에 열고 있다.
○ 새것의 익숙함
‘노르딕 데이’전과 ‘핀란드 디자인’전은 기능과 간결한 미를 결합한 북유럽 디자인을 조명한다. 실용적이면서 자연재료를 잘 살려낸 북유럽 지역의 디자인 특성을 반영한 용품과 깔끔하고 감각적 전시 공간의 연출에서 두루 배울 점이 있다.
서울 중구 수하동 KF문화센터 갤러리에서 5월 5일까지 열리는 ‘노르딕 데이’전은 겨울이 긴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삶을 생활용품과 미술작품으로 보여준다. 질박하고 튼튼한 가구에 자연광에 가까운 화려한 조명이 어우러진 거실 등을 꾸며 놓았다. 14일까지 열리는 ‘핀란드 디자인’전에선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디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버리기 주의’를 거부하는 디자인은 세대를 잇는 물건으로 과잉소비사회에 대한 경고를 버무려 냈다.
묵은 것의 온기와 새것의 향기, 전시의 성격은 달라도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다. 무명의 장인이든 유명 디자이너든 좋은 디자인의 힘이란,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흔하고 평범한 물건도 질리지 않고 오래 사랑받게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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