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32>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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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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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한 기운 보충”… 동서양 불로장생 묘약으로

역사적으로 진시황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아직까지 세월을 이겨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 대신 늙지 않는 약초나 식품을 찾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유사 불로초가 등장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로장생의 묘약으로 가장 많이 거론됐던 식품 가운데 하나가 참깨다. 고대 신화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참깨는 젊음을 유지해 주는 식품으로 꼽혔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후기의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참깨는 신선이 먹는다는 선약(仙藥)에 가까운 식품이라고 극찬을 해놓았다. 뽕잎가루와 참깨 등을 섞어 만든 약을 석 달 정도 복용하면 몸에 윤기가 돌고 반년을 먹으면 모든 병이 사라지며 계속 복용하면 하얀 수염이 검어지고 다리에 힘이 생기며 눈도 밝아지니 자연히 오래 살 수 있는데 신선이 먹는 음식 중에서도 최상의 식품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면서 뽕잎가루와 검은 참깨로 약을 만드는 방법은 호승(胡僧), 그러니까 서역에서 온 승려가 비밀스럽게 전한 비법이라고 했으니 참깨를 신선들이 먹는다는 불로장생의 묘약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신선의 세계에서는 참깨가 진짜 불로초였던 모양이다. 6세기 중국 양나라 때 의학자이며 도교의 도사이기도 했던 도홍경(陶弘景)은 참깨가 여덟 가지 곡식 중에서도 가장 좋은 식품이라면서 “신선은 참깨로 밥을 지어 먹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오래 산다”고 했다.

도홍경은 옛날부터 전해지는 여러 가지 의학적인 처방을 모아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는 고대 의학서를 정리하고 주석을 달았는데 “참깨는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고 적어 놓았다.

참깨를 신선의 음식으로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나 중국뿐만이 아니다. 참깨의 원산지는 중동 지방이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아시리아에서 처음 참깨를 식용으로 재배했다는데 이곳에서도 참깨를 불로초로 여겼다.

아시리아의 천지창조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세상을 만들기 전에 참깨로 술을 빚어서 마셨다고 한다. 참깨를 창조의 작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음식으로, 또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신이 먹었던 식품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 고대 힌두 전설에서도 참깨 씨앗을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했으니 고대에는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에서 참깨를 불로초라고 여겼다.

신화시대를 지나서도 참깨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여겨 고대 그리스의 병사들은 전쟁 때 참깨를 전투식량으로 지참했는데 적은 양으로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깨가 동양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1∼2세기 무렵이고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 이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재배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소출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산 참기름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값이 비싸서 아껴 먹었을 정도로 귀한 식품으로 대접받았다. 이 때문에 요즘의 떡값처럼 조선시대에는 참깨가 뇌물로 건네졌다.

문종실록에 “참깨 열 말을 뇌물로 받은 자가 있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고 성종실록에는 임금의 장인인 부원군이 “자신의 하인이 참깨 두 섬을 뇌물로 받았다는 고발이 들어왔는데 사실과 다르니 혐의를 벗겨 달라”며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만큼 예전에는 참깨가 귀했던 모양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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