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회 동아연극상]한국 정서로 풀어낸 셰익스피어 희극 ‘템페스트’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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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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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목화의 ‘템페스트’가 제48회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템페스트는 연출상(오태석)도 수상해 2관왕을 차지했다. 대상 수상작은 45회 때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원전유서’ 이후 3년 만이다. 상금은 2000만 원이다. 템페스트의 연출가 오태석 씨(71)는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9회, 33회, 42회에 이어 4번째로 받았다. 연출상 역대 최다 수상자인 이윤택 씨(27회, 31회, 43회, 45회 수상)와 같은 기록이다. 오 씨가 대상과 연출상을 동시에 받기는 42회 때 연극 ‘용호상박’ 이후 6년 만이다.》

지중해를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을 삼국시대 한반도 남해를 무대로 한국적으로 풀어낸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 8월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 공식 초청 공연을 펼칠 때 사진이다. 극단 목화 제공
지중해를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을 삼국시대 한반도 남해를 무대로 한국적으로 풀어낸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 8월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 공식 초청 공연을 펼칠 때 사진이다. 극단 목화 제공

올해 예심에 오른 작품은 심사위원 추천작 6편을 포함해 모두 29편으로 예년과 비슷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은 “희곡 부문을 빼고는 각 부문에 고루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한국적 정서와 해학으로 풀어 낸 템페스트는 지난해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시연회를 했고 올해 한국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식 초청 공연을 펼쳤다. 셰익스피어 원작이지만 배경을 가야와 신라가 지배하던 5세기 한국 남해안 섬으로, 주인공인 프로스페로와 나폴리 왕 알론조를 가락국의 지지왕과 신라의 자비왕으로 바꿔 동양적 정서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심사위원들은 “한국적인 정체성과 미학을 추구하는 반가운 작품으로, 완성도에서도 단연 뛰어났다”며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작으로 꼽았다. 대상 수상작이 결정됨에 따라 작품상은 따로 뽑지 않았다.

연기상은 여자 배우 없이 남자 배우 두 명에게 돌아갔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손기호 작·연출)의 박용수 씨와 ‘우어파우스트’(괴테 작·다비트 뵈슈 연출)의 이남희 씨다. 지난해에는 반대로 남자 배우 없이 길해연(‘사랑이 온다’), 서주희 씨(‘대학살의 신’)가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올해는 심사 대상작 중 여배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남희 씨는 파우스트의 초기작을 극화한 ‘우어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 역을 맡아 파우스트 역의 정보석 씨와 연기 대결을 벌였다. 박용수 씨는 자폐적인 증세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던 아들이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고향인 경주를 찾아 50년을 해로한 부모와 함께 지내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연극에서 겉으로는 큰소리치지만 따뜻한 속정이 있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대미술·기술상은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소포클레스 작·서재형 연출)의 안무를 맡은 장은정 씨가 받았다. 안무자가 이 부문 수상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이 작품에서 안무가 시각적으로 뛰어난 이 작품의 핵심이었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안무가가 동아연극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개념연극상은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작)을 연출한 김현탁 씨에게 돌아갔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높지 않았지만 트레드밀(러닝머신)을 등장시킨 것은 새로웠고 세일즈맨의 죽음과 몰락 과정을 절실하게 표현해 극의 핵심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인연출상은 극단 하땅세의 ‘타이투스 앤드로니커스’(셰익스피어 작)를 연출한 무대디자이너 출신의 연출가 윤시중 씨가 받았다. 김현탁 씨와 각축 끝에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작품은 조금 어설펐지만 남들이 잘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일관되게 해 왔다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신인 연출가답지 않게 공간을 사용하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도 높이 샀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3층 회의실에서 동아연극상 최종심사 중인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이병훈(연출가) 김방옥(평론가·동국대 교수) 김중효(무대미술가·계명대 교수) 최치림(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김윤철(국제연극평론가협회 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미도(평론가·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정복근 씨(극작가).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3층 회의실에서 동아연극상 최종심사 중인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이병훈(연출가) 김방옥(평론가·동국대 교수) 김중효(무대미술가·계명대 교수) 최치림(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김윤철(국제연극평론가협회 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미도(평론가·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정복근 씨(극작가).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유인촌 신인연기상은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 역을 맡아 노래와 연기, 춤 등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여준 박해수 씨, ‘못생긴 남자’(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 작·윤광진 연출)에서 파니 역으로 1인 다역을 소화한 이슬비 씨가 받았다. 박 씨는 예심을 통과한 또 다른 연극 ‘됴화만발’(조광화 작·연출)에서도 주인공으로 무표정의 인위적인 연기를 펼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씨는 성형 수술을 통해 미남이 된 주인공의 얘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주인공 레테의 아내와 병원 간호사로 1인 2역을 연기했다.

특별상은 국립극단 출신 원로 배우 장민호 씨가 받았다. 장 씨는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올해 국립극단의 연극 ‘3월의 눈’에서 열연을 펼쳤다. 시상식은 내년 1월 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간결-해학의 전통놀이 무대위에서 살린 덕분” ▼


대상-연출상 오태석 씨

내년이면 연극 외길 인생 52년째인 극작가이자 연출가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71·사진)의 장인 정신은 끝을 모른다. 추상적이고 복잡한 것을 걷어내고 순수하고 단순해지는 그의 무대 미학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오 씨가 한국적 정서와 색채로 재구성한 ‘템페스트’는 올해 상복이 터졌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한국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공식 초청받아 공연했고 현지 일간지 ‘헤럴드’가 페스티벌 참가작 중 우수작을 선정해 주는 ‘헤럴드 에인절스 상’을 받았다. 26일에는 한국연극협회 주최의 한국연극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남자연기상(정진각), 무대예술상(이승무)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이날 제48회 동아연극상 2관왕에 오른 게 그 상복의 절정이었다. 휴대전화가 없어 극단 단원을 통해 올해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도 믿기지 않아 ‘진짜 대상 수상이 맞느냐’고 되물었다는 오 씨는 “한편으로 내가 풀이 자라지 못하게 막는 ‘잡초’ 같은 존재는 아닐까 싶어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템페스트’가 좋은 평가를 받은 데 대해 오 씨는 “우리 선조들이 전해준 전통 놀이의 힘”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이 생략과 비약을 잘해요. 간결하면서도 한편으론 겹으로 의미를 전달합니다. 검은 옷을 만들더라도 안에 붉은색을 받쳐 은은한 색을 내지요. 마음 아픈 것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고요. 웃음도 발효시킵니다. 그게 곧 해학이죠. 이번 작품을 통해 이런 우리 전통의 좋은 ‘결’과 지혜를 무대에서 살리고 싶었어요. 그게 셰익스피어 작품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외국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한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템페스트의 구상은 3년 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역시 한국적 색채가 물씬 풍기게 재해석한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1995년 초연)을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조너선 밀스 예술감독이 보고는 그에게 ‘이런 식의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한번 에든버러에서 공연해 달라’고 부탁한 게 계기였다.

올해 에든버러에서 공연하고 호평받은 덕분에 내년 해외 초청 공연이 벌써 두 차례나 잡혔다. 2월 초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100년 전통 극장에서 공연하고 7월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초청 공연을 펼친다.

오 씨는 창작 작품도 내년 5월 공연을 목표로 현재 대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국유사 내용으로 현재의 북한 상황을 빗대고 남북 관계가 앞으로 잘됐으면 하는 소망도 녹인 작품을 구상 중이다.

동아연극상과 그는 인연이 깊다. 형제간의 우애와 분단 상황을 아우른 작품 ‘용호상박’은 2005년 동아연극상에서 10년 만의 대상 수상작으로 뽑혔고 연출상과 연기상(전무송)까지 받아 대회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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