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2월 초, 세상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알렸다. ‘전남 보성군 벌교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법조계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미8군에서 비행기표와 영어성경책 등을 판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맨으로 활약, 1976년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하면서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도입,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뿌리깊은 나무’가 강제 폐간됐고 1984년 ‘샘이 깊은 물’ 창간, ‘한국의 발견’ ‘판소리 전집’ ‘민중 자서전’ ‘뿌리깊은 나무 팔도소리전집’을 간행하는 등 전통 문화를 되살리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여….’ 》
한창기(1936∼1997). 그는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살았던 사람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아 돈을 벌어 좋은 책 만들고 전통 되살리고 문화재 수집하는 데 모두 썼다. 장승 벼루 한복 석불 문인석 토기 자기 목가구 민화 등 그의 컬렉션은 6400여 점. 그는 옛사람들의 정겨운 일상의 흔적을 모아 박물관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의 컬렉션을 전시 연구하는 박물관이 생겼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옆에 21일 개관하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세상을 떠난 지 14년 만에 그의 꿈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의 고향인 벌교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17일 박물관을 찾았다. 14년 동안 박물관 건립을 이끌어온 차정금 뿌리깊은나무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한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그분의 뜨거운 마음과 방대한 지식이 땅에 묻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 그 정신을 되살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한창기는 독신이었다. 그가 타계하자 남동생 부부가 1998년 뿌리깊은나무재단을 설립해 그의 유지를 기리고자 했다. 그러나 동생도 곧이어 세상을 떠났다. 한창기의 남은 재산이라곤 서울 성북구 성북동 집 한 채였기에 건립 자금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 와중에 동생의 부인이 박물관 건립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가 차 이사장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립된 박물관을 지어 그분의 뜻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습니다. 2003년 고향인 벌교 옆 순천에 박물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성북동의 집을 팔아 순천에 용지를 매입했지요. 공사를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 때문에 수년 동안 중단되기도 했지요. 토지와 한옥을 순천시에 기증하고, 유물을 기탁한 뒤 순천시립박물관으로 건립하기로 하고 공사를 이어갔지요.”
박물관은 기획전시실 샘이깊은물, 상설전시실 뿌리깊은나무, 세미나실 배움나무 등으로 구성됐다. 기획전시실은 한글을 사랑했던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글 창제 이후부터 대한제국기까지의 한글 관련 자료를 전시했다. 상설전시실에는 토기와 청동그릇, 조선시대 주판, 약탕기, 문방구, 담뱃대, 안경, 목가구, 신발, 의복 등 옛사람의 일상에 관한 모든 것을 망라했다. 판소리를 사랑했던 사람답게 북 대금 소금 퉁소 단소 등 악기도 많다. ‘샘이 깊은 물’ 창간호 표지그림이었던 조선시대 미인도도 있다. 문인석 동자석 석불 석탑 등 야외전시장의 석물도 매력적이다.
한옥에 걸터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한창기. 그는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옛사람들의 흔적을 수집하는 데 생을 다 바쳤다. 그는 화려한 것보다는 꾸밈없고 소박한 문화재를 더 좋아했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제공 전남 구례의 고택도 매입해 박물관 옆으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차 이사장은 “한옥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분은 1980년에 이 집을 매입하고 싶어 하셨다. 이 건물에서 영화 ‘서편제’를 촬영하기도 했는데, 2000년대 초 이 집이 방치됐다는 것을 알고 매입해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말했다. 이 한옥은 고가구 전시장, 전통음악 공연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박물관의 과제는 한창기의 출판과 문화사업 분야의 정신을 부각하는 것. 그는 1970년대에 ‘브리태니커 판소리회’를 결성하고 녹차와 찻그릇을 보급하기 위해 잎차 사업소를 설립했다. 또 칠첩반상기를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다.
전시실을 둘러보다 백자 한 점 앞에 발길이 멈췄다. 한창기 지인들의 회고가 떠올랐다.
‘그의 마지막 컬렉션은 병상에 누워 인사동의 한 골동상에서 열린 고미술전 카탈로그를 보고 오매불망하다가 끝내 남의 손을 빌려서 사들이고야 만 아름답고 기품 있는 장롱과 백자라고 한다. 그가 세상을 뜬 병실 침대 밑에서는 그가 만지작거리다 둔 그 백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특집! 한창기’·2008년)
바로 그 백자였다. 백자청화 매화대나무무늬 필통. 담백하고 그윽한 모습이 한창기의 삶과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개관식은 21일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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