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조선 유교철학 가르치는 마크 세턴 교수 “한국은 왜 퇴계-율곡만 내세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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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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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철학의 나라입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이이의 초상이 그려진 한국의 지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17일 미국 뉴욕 
퀸스의 예감 아트 갤러리에서 동양철학 강의를 연 마크 세턴 교수를 만났다. 뉴욕=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한국은 철학의 나라입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이이의 초상이 그려진 한국의 지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17일 미국 뉴욕 퀸스의 예감 아트 갤러리에서 동양철학 강의를 연 마크 세턴 교수를 만났다. 뉴욕=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태극기만큼 철학적인 국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국이 5000년 전 음양사상을 다룬 주역 철학을 만들었다면 한국은 음양이 조화된 태극 마크와 우주 만물의 원리를 담은 8괘를 국기에 그려 넣었죠. 복잡한 주역의 철학을 태극기에 집대성한 것입니다.”

푸른 눈의 학자는 영어로 한국의 동양철학을 논하고 있었다. 1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예감 아트 갤러리에서 ‘음양철학’을 강의한 마크 세턴 교수(59). 그는 한국 유교에 매료돼 성균관대에서 한국철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대에서 한국의 유교철학을 가르쳤다. 현재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브리지포트대에서 동양철학과 세계종교를 가르치고 있다. 17일 강연이 끝난 후 기자와 한인식당에서 소주와 부침개를 먹으며 한국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퇴계와 율곡만을 내세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두 사람도 위대하지만 중국의 철학사상을 발전시켰다는 측면에서 창조적인 사상가라고는 할 수 없어요. 정약용을 필두로 한 실학사상은 서양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큼 창조적인 사상입니다.”

세턴 교수는 서양의 학문과 동양사상을 연결하고 주자학에만 치우친 기존 학풍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었던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에 대한 연구와 세계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세턴 교수는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의 칼날을 은유적으로 풍자한 게 실학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세요. 읽을수록 날카로운 풍자에 놀라게 됩니다. 자신이 속한 양반계급의 세태를 풍부한 유머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를 능가하는 사상가로 박지원을 꼽았다.

해외 동양철학계에서 한국철학이 갖는 위치를 물었더니 한숨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는 위치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동양철학 하면 으레 90%가 중국철학을 논했고 한국철학은 그저 중국철학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팽배했죠. 때론 일본철학보다도 인지도가 낮습니다.” 세턴 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도덕경을 보여주며 박지원의 양반전이나 호질과 같은 문학서, 한국 실학자들의 정치사상을 논한 영문 서적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때쯤 세턴 교수는 해법을 제시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가 좋은 사례입니다. 동양철학 속에서 한국철학을 소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곳이죠. 한국철학을 무조건 독립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철학의 매력을 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영문 연구와 서적 출판에 힘써야 합니다.”

그는 요즘 올바른 가치관에 대한 교육 없이 지나친 물질주의만을 강조한 미국의 교육실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저서를 쓰고 있다. 책 이름을 물었더니 빙긋 웃으며 알려줬다. “‘박지원의 경고’입니다.”

뉴욕=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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