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82>전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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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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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 며느리 돌아온다”… 육질 부드러워 씹는맛 일품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는 식상한 표현이 다시 등장할 때가 됐다. 진부한 말이지만 적어도 한국인에게 전어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맛은 주관적이지만 나라와 민족이 다르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전어구이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일본말로 전어는 ‘고노시로’다. 일본 역시 가을 전어를 최고로 여기지만 주로 젓갈이나 식초에 절이거나 회로 먹을 뿐 구워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어 굽는 냄새를 맛있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일본 중부지방에 예쁜 딸을 둔 노인이 있었다. 딸의 아름다움에 반해 영주가 첩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자 부모가 딸이 병들어 죽었다며 영주를 속이고 영주가 보낸 신하 앞에서 바로 화장을 한다며 관을 태웠다. 관 속에는 딸 대신에 생선을 넣었는데 바로 전어였다. 생선 타는 냄새를 맡은 신하가 딸이 정말로 죽었다고 영주에게 보고를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전어를 자식 대신에 태운 물고기라고 해서 ‘子の代(고노시로)’라고 불렀다. 일본인들이 전어구이를 먹지 않는 풍습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일본어 어원사전에 나오는 고노시로라는 이름의 유래이지만 사전에는 ‘전해지는 속설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1924년 간행된 풍속서인 ‘아키다풍속문답(秋田風俗問狀答)’에 일본에서는 아이 태반을 묻을 때 전어를 곁들여 묻는 풍속이 있다고 했다. 그래야 아이가 잘 자란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딸 대신 전어를 태웠다는 속설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일본인에게는 전어 굽는 냄새가 썩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일본 속담에도 전어와 관련해 며느리가 등장한다. “가을 전어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전어의 잔가시가 며느리 목에 걸릴까 걱정해서라는 풀이지만 실상은 며느리 구박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전어를 ‘반지(斑>)’를 비롯해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전어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중국인에게는 그다지 입맛을 유혹하는 물고기가 아닌 모양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며느리가 돌아올 정도로 맛있는 물고기였으므로 가을이 되면 전어 값이 올랐다. 이름에도 돈(錢)이 들어가서 전어(錢魚)다. 정조 때 실학자 서유구가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생선의 종류와 특징을 기록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이름의 유래가 나온다.

“전어는 고기에 가시가 많지만 육질이 부드러워 씹어 먹기가 좋으며 기름이 많고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서 서울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다.”

공급은 제한돼 있고 수요는 많았으니 값이 비싸다는 것인데 수요공급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실제로 선조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조헌은 ‘동환봉사(東還封事)’에 경주에서는 가을 전어를 명주 한 필과 바꾸고 평양에서는 겨울 숭어를 정포 한 필로 바꾼다고 했다.

상품 수급구조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말이지만 조선 중기에 전어 값이 비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뜻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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