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이슈]하이브리드 카 구매가치는

  • 동아일보

환경 살리고 디자인 좋은데 경제성만 따지나요?

현대 자동차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기아자동차 K5 하이브리드.
현대 자동차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기아자동차 K5 하이브리드.
대기업 부장인 곽모 씨(49·서울 양천구 목동)는 10년 된 차를 바꾸기로 하고 최근 하이브리드 차량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 곽 씨는 “차 값은 비싸지만 연료소비효율이 좋아 연료비로 가격 차를 상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동차업체들이 연비도 높고 힘도 세다고 광고하고 있어 더욱 마음이 끌린다”고 덧붙였다.

곽 씨의 말대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택하면 초기 구입비용을 뺀 나머지 연비와 힘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전기모터와 내연기관(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화석연료를 태우는 차량의 성능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며 “다만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싼 값과 어느 정도 부족한 성능을 감내할 수 있다면 구매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조언한다.

○ ‘hybrid 1.(동식물의) 잡종 2. 혼성체, 혼합물’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이란 바퀴를 굴리는 데 필요한 힘을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함께 생산하는 차량을 말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언덕을 올라갈 때는 엔진이 바퀴를 굴리면서 동시에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한다. 또 브레이크를 작동할 때도 마찰에너지를 전기로 바꿔 배터리를 충전한다. 그리고 차가 서 있다가 출발할 때나 천천히 달릴 때는 충전된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전기모터의 힘으로 바퀴를 굴리는 것이다.

요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대대적으로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차량이다.

전기모터가 주로 힘을 발휘하고 내연기관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발전기 역할만 하는 하이브리드도 있다. 쉐보레가 미국에서 시판 중인 ‘볼트’는 주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전기를 콘센트에 꽂아 외부로부터 충전해 사용한다. 차량 안에는 연료를 사용하는 소형 엔진이 있지만 이 엔진으로는 바퀴를 굴리지 않고 전기를 생산해 배터리에 충전하는 발전기의 용도로만 사용한다.

쉐보레가 이 차를 내놓으면서 “L당 주행거리가 100km에 이른다”고 발표했을 때 “외부에서 충전된 전기에너지를 감안하지 않고 발전기 용도로 사용되는 엔진이 소모하는 연료량만 계산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가격과 성능은 잊어라’

어떤 방식을 사용하건 하이브리드 차량의 연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는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의 공인 연비가 L당 21km에 이른다. 하이브리드의 원조 격인 도요타 ‘프리우스’는 L당 29.2km이며 혼다의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차량 ‘인사이트’도 1L로 23km를 갈 수 있다.

하지만 연비만 보고 하이브리드 차량 구입을 결정하기에는 다른 고려사항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선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정부의 보조금 혜택까지 더해 2975만∼3295만 원이며 K5 하이브리드도 2925만∼3095만 원이다. 쏘나타, K5보다 훨씬 덩치가 작고 승차감이 떨어지는 도요타 프리우스는 3700만 원대이며 비슷한 크기의 인사이트도 2950만∼3200만 원대에 가격이 책정돼 있다.

쏘나타 가솔린 모델의 가격이 2002만 원부터 시작하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차 값 차이만큼 기름을 더 넣으면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공인연비로 1년에 2만 km를 주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쏘나타 가솔린 모델은 연간 연료비가(23일 전국 평균가 1920.32원 기준) 295만4338.462원으로 같은 모델의 하이브리드 차량(182만8876.19원)보다 112만5462.272원 비싸다. 차 값 차이가 약 1000만 원임을 감안하면 차량 구입 후 약 9년간은 가솔린 차량이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경제적인 셈이다.

차량의 성능도 같은 급의 가솔린 모델에 비해 뒤처진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최고 출력은 150마력으로 가솔린 모델(165마력)보다 떨어지며 바퀴를 비트는 힘인 토크도 분당 엔진회전수(rpm) 5000에서 18.3kg·m로 4600rpm에서 20.2kg·m를 내는 가솔린 모델보다 약하다. 토크가 작은 차는 언덕길에서나 많은 짐을 실었을 때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족한 힘 때문에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에는 광폭 타이어와 대형 휠(225/45R18) 옵션이 없다. 접지면이 늘어날수록 마찰에 따른 에너지 손실이 커져서 힘이 더욱 부족해지고 연비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 ‘친환경론자’의 교통수단

비싼 값, 부족한 힘, 폼 안 나는 바퀴…. 그럼에도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나는 하이브리드 타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만족감 때문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대히트를 친 것도 차량의 연비나 성능이 아닌 디자인 때문이라는 게 자동차업계의 분석이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하이브리드 차량임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때문에 프리우스 운전자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더 쓴 사람’이라는 존경심 담긴 시선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쏘나타와 K5를 계약하는 운전자들 역시 차량의 성능이나 가격이 아닌 일반 쏘나타보다 79g 적은 이산화탄소 배출량(km당 111g)을 중요시하는 ‘환경론자’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독특한 디자인은 프리우스의 디자인 마케팅 전략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1000만 원을 더 쓴 환경론자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디자인 서비스’라는 것이다.

한편 하이브리드 차량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자동차업계에서는 전기차와 연료전지차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배기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 전기차들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며 “하이브리드는 전기차로 진화하기 전의 일종의 ‘임시 차량’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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