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듀얼리즘의 펜디 메시지 한류따라 세계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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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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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빛둥둥섬 패션쇼 현장취재
듀얼리즘=<상반된 소재로 매치한 패션>

서울 서초구 세빛둥둥섬에서 2일 열린 펜디쇼는 상반된 소재와 색상을 세련되게 매치해 펜디의 브랜드 철학인 듀얼리즘(이중성)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런웨이를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만들어 세빛둥둥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점도 눈길을 끈다. 펜디 제공
서울 서초구 세빛둥둥섬에서 2일 열린 펜디쇼는 상반된 소재와 색상을 세련되게 매치해 펜디의 브랜드 철학인 듀얼리즘(이중성)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런웨이를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만들어 세빛둥둥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점도 눈길을 끈다. 펜디 제공
달이 아니라 한강이었다. 2007년 중국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열었던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다음에는 어디서 패션쇼를 할까요? 달에서?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라고 외쳤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만리장성에서 열린 펜디쇼는 전 세계에 생중계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랬던 펜디가 4년 만에 선택한 곳은 한강의 세빛둥둥섬이었다. 펜디는 유럽에서 한류(韓流)가 거세게 일고 있는 점에 주목했고, 유(流)는 물결을 의미해 한강을 떠올렸다. 마침 한강에 플로팅 아일랜드인 세빛둥둥섬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돼 서울시에 패션쇼를 제안했다. 서울시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모피에서 출발한 펜디가 마련한 2011년 가을겨울 패션쇼에는 모피 제품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세빛둥둥섬에서 모피가 나오는 패션쇼가 열린다는 소식에 국내 동물애호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 펜디쇼는 큰 사고 없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뜨거운 찬반 논란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 만든 모피(fur)를 입어야겠습니까?”

“지금 (펜디쇼) 입장하는 분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노 퍼(No, fur)! 노 퍼(No, fur)!”

2일 오후 7시 반경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둥둥섬 입구 양쪽에는 동물애호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앳된 목소리로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 예뻐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시위 참가자들이 데리고온 강아지들도 여러 마리 있었다. 경찰과 함께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었다.

행사가 열리기 전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세금으로 만든 세빛둥둥섬에 호화 모피쇼가 웬 말이냐”며 서울시에 거세게 항의하자 지난달 서울시는 패션쇼에서 모피 제품을 모두 빼달라고 펜디 측에 요청했다. 모피 제품을 빼지 않으면 쇼를 취소하겠다고 한 것이다. 펜디는 강력 반발했다. 펜디 측은 “서울시가 소수 의견에 휩쓸려 국내외 인사 1200여 명을 초청한 국제적인 행사를 2주가량 앞두고 60개 제품 가운데 20여 개나 되는 모피 제품을 모두 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항의했다. -결국 서울시는 “패션쇼를 하되 모피 제품은 최소화해 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번 펜디쇼에는 처음으로 어린이 모델이 등장했다. 펜디는 선글라스, 시계 등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남성 모델도 다수 출연시켜 펜디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펜디 제공
이번 펜디쇼에는 처음으로 어린이 모델이 등장했다. 펜디는 선글라스, 시계 등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남성 모델도 다수 출연시켜 펜디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펜디 제공
이효리도 논란에 가세했다. 지난달 이효리는 펜디 쇼에 항의하는 글을 리트윗(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는 것)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개념 연예인’이란 말까지 들었다. 펜디 쇼에 참석하는 연예인으로선 부담이 매우 커진 것이다. 당초 펜디는 국내 여배우 10여 명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논란이 커지자 결국 초청을 취소했다. 이에 장쯔이, 대만 여배우 허우페이천, 일본 모델 하나 마쓰시마 등 해외 유명인사들은 펜디 쇼에 참석했지만 국내 여배우들은 오지 않았다.

세빛둥둥섬으로 들어가자 건물 로비에는 펜디의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코트와 조끼는 물론이고 핸드백까지, 모피를 다양하게 활용한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모피는 펜디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상반된 소재와 색채, 현대적으로 조합

패션쇼장은 원형이었다. 런웨이도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설치돼 이색적이었다. 좌석도 런웨이를 따라 둥글게 배치됐다.

쇼가 시작되기 직전 2층 좌석에서 “모피 반대!”라는 외침이 두 차례 터져 나왔지만 곧바로 진행요원이 제지했다.

조명이 꺼지고 쇼가 시작됐다. 모피를 비롯해 가죽으로 만든 원피스, 바지, 재킷 등 모피와 가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펜디 특유의 개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쇼는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됐다.

색상이나 소재가 상반된 아이템들을 매치해 펜디의 브랜드 철학인 ‘듀얼리즘(Dualism·이중성)’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모피와 가죽 이외에도 다양한 재질의 옷감을 풍부하게 사용했다. 검은색과 갈색, 회색 등 차분한 색상은 물론이고 파란색과 빨간색, 보라색 등 선명한 색채가 조화를 이뤄 세련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모피와 가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두꺼운 소재로도 실루엣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한국인 모델인 장윤주 한혜진 송경아 이현이를 비롯해 일본인 모델 아이 도미나가, 중국인 모델인 쑨페이페이 등 아시아 유명 모델들이 런웨이를 누볐다.

어린이 모델들도 등장해 깜찍함을 더했다. 펜디쇼에 어린이 모델이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급 아동복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의지로 비쳤다. 남성 모델이 다수 출연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펜디 측은 “남성과 어린이 모델이 착용한 지갑, 구두, 선글라스, 시계 등은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쇼를 위해 특별히 만든 아이템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세빛둥둥섬을 연결한 다리에서는 북을 치는 공연이 열렸다. 쇼가 끝난 후 열린 파티에서는 세계적인 DJ 드미트리가 등장했다.

마이클 버크 펜디 최고경영자(CEO)는 “펜디는 언제나 도전과 혁신을 추구해 왔다”며 “도전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이를 감수하지 않으면 진보한 패션을 보여줄 수 없는 만큼 계속 이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며 “밀라노, 마이애미 등에 이어 한국에서도 대학생 디자인 콘테스트를 열어 우승자에게 펜디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만리장성을 뛰어넘지 못햇다

한국 유명 모델인 한혜진(오른쪽), 송경아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펜디 작품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한국 유명 모델인 한혜진(오른쪽), 송경아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펜디 작품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행사장 인근에 설치된 대형 야외 스크린에서는 2007년 만리장성에서 열렸던 펜디 쇼 영상이 반복 상영되고 있었다. 불빛으로 가득 찬 만리장성에서 모델들은 계단이 많은 런웨이를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쇼가 끝나자 ‘The Wall, 芬迪(분적·향기가 퍼지다)’이라는 자막이 떴다.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파격적이었다.

올해 펜디 쇼는 만리장성 패션쇼 이후 열리는 특별한 행사란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물론 이번 쇼도 매우 멋졌다. 장소 역시 플로팅 아일랜드라는 점에서 새로웠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을 찾기는 어렵다고 했던가. 2007년 쇼를 능가하는 새로움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플로팅 아일랜드의 특성을 100% 활용하진 못한 것 같았다. 원형 런웨이라는 점 외에는 만리장성 쇼와 같은 파격을 찾기가 어려웠다. 실내에서 쇼가 진행됐기 때문에 쇼만 놓고 볼 때는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열렸다는 점이 부각되지 못했다. 쇼가 끝나고 주요 인사들이 식사를 하거나 파티를 연 공간에서는 창문 너머로 한강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세빛둥둥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활용하거나 야외에서 패션쇼를 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강이라는 물의 이미지를 담아내면서 세빛둥둥섬의 야간 조명이 어우러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행사장 입구에는 규모는 조금 줄었지만 모피 반대운동 시위자들이 촛불을 들고 여전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패션쇼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세빛둥둥섬에는 노란색 조명으로 만든 ‘FENDI’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떠 있었다.

미국 시트콤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여주인공 4명 가운데 1명인 서맨사(킴 캐트럴)는 하얀 모피 코트를 입고 오랜만에 방문한 뉴욕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던 중 모피반대 시위자에게서 붉은색 페인트 세례를 받는다. 아끼던 모피 코트가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서맨사는 울먹이면서도 이렇게 외친다. “난 이래서 뉴욕이 좋아!”

특수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모피 패션을 즐기는 이들과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공존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패션쇼는 ‘펜디’라는 브랜드와 한강, 그리고 서울을 전 세계 패션계가 주목하게 한 동시에 모피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함께 존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펜디 브랜드는::
1925년 로마서 가죽제품 가게로 출발, 2001년 LVMH에 인수돼


펜디 브랜드는 1925년 탄생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모피와 핸드백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던 아델레 카사그란데가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결혼한 후 가게 이름을 ‘펜디’로 바꾸면서 펜디의 역사가 시작됐다. 번창하던 펜디는 창업주의 다섯 딸인 안나, 카를라, 프랑카, 알다, 파올라가 사업에 뛰어들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와 손잡으면서 펜디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했다. 라거펠트는 두 개의 F자가 거꾸로 마주보고 있는 펜디 로고를 만들었다. 그는 모피를 가볍게 만드는 한편 다양한 색상을 내는 기법을 개발해 모피패션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펜디는 향수 시계 선글라스 등 각종 패션 아이템으로 제품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 바게트처럼 옆구리에 낄 수 있어서 일명 ‘바게트백’으로 불린 펜디의 핸드백은 1997년 등장한 이후 세계 패션계를 강타했다. 펜디는 2001년 루이뷔통, 디올 등을 거느리고 있는 패션그룹 LVMH에 인수됐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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