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베타, 꽃을 닮은 어항 속 싸움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미국 패션 브랜드 ‘로다테(RODARTE)’의 2008년 가을겨울 패션쇼에 등장한 드레스. 베타의 색상과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www.trendhunter.com
미국 패션 브랜드 ‘로다테(RODARTE)’의 2008년 가을겨울 패션쇼에 등장한 드레스. 베타의 색상과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www.trendhunter.com
높은 사각형 유리병 주위를 남자들이 둘러선다. 곧이어 유리병 속으로 선수 입장. 선수들은 아가미를 부풀리고 지느러미를 기운껏 편다. 그들은 싸움 직전의 흥분으로 온몸을 떨어댄다. 드디어 싸움 시작. 빨간색 선수는 생김새와 움직이는 모양이 꼭 불덩이같다. 입은 상대를 물어뜯고 힘센 꼬리는 채찍으로 변한다. 싸움은 한 선수가 죽거나, 주인이 병뚜껑을 열어 항복을 표시할 때까지 계속된다.

베타(Betta)는 태국과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 반도가 원산지인 열대어다. 수컷들의 공격적 성향 때문에 현지에서는 싸움고기, 즉 투어(鬪魚)로 쓰인다. 록 밴드 이름 등으로 흔히 알려진 럼블피시(rumble fish)는 베타의 별칭으로, ‘싸움꾼 물고기’란 뜻의 영어다.

태국에서는 700년 전 수코타이 왕조의 리타이 왕 시대에 물고기 싸움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국인들은 ‘족보’를 보고 투어를 구입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들은 베타를 싸움꾼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수컷이 여러 마리 있는 수조에 싸움꾼 후보 한 마리를 넣어 ‘스파링’을 시키고 경기 전 만 하루 동안은 먹이를 주지 않는다. 물고기의 피부를 강하게 하기 위해 아몬드 잎을 우린 물에 목욕을 시키기도 한다. 예전에는 싸움에서 이긴 물고기를 번식용으로 남기고, 패자는 강에 풀어주는 것이 관습이었다. 흥미롭게도 인도차이나는 닭싸움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베타가 싸움꾼이 된 이유는 그 서식지가 얕은 논과 좁은 수로란 점에 있다. 번식할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컷은 목숨 걸고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만 한다.

○ 헤엄치는 꽃송이

베타는 싸움 이외에, 그 아름다움 때문에도 찬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동방의 보석(the jewel of the orient)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 민물고기 중 가장 화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항에 담긴 베타는 물속을 헤엄치는 꽃송이처럼 보인다. 베타 애호가는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이 있다.

태국에서 항공택배로 방금 도착한 베타. 태국의 수출업자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각형 비닐 포장에 담는다. 공격성이 강한 베타는 다른 물고기가 함께 있으면 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베타는 공기 중의 산소를 직접 들여 마실 수 있어 물이 많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태국에서 항공택배로 방금 도착한 베타. 태국의 수출업자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각형 비닐 포장에 담는다. 공격성이 강한 베타는 다른 물고기가 함께 있으면 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베타는 공기 중의 산소를 직접 들여 마실 수 있어 물이 많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베타의 원종은 본래 칙칙한 녹색이나 갈색의 볼품없는 물고기였다. 그러나 여러 세대에 걸친 품종개량으로 몸의 색과 지느러미의 모양이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베타의 품종은 색과 꼬리지느러미에 따라 갈린다.

꼬리 모양을 기준으로 하는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베일테일(꼬리가 면사포 모양), 하프문테일(〃 반달 모양), 델타테일(〃 부채꼴), 크라운테일(〃 왕관 모양), 더블테일(꼬리지느러미가 2개) 등이 있다. 플라캇은 야생 베타와 비슷한 짧은 지느러미가 특징이다.

할인점의 애완동물 코너에서 볼 수 있는 2000∼3000원짜리 베타는 거의 다 베일테일이다. 가끔 더 고급으로 치는 크라운이나 플라캇이 운 좋게 섞여 있기도 하다.

베타의 색은 단색부터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것까지 다양하다. 색상은 빨강과 파랑, 녹색, 노랑, 검정 등 거의 모든 컬러가 있으며, 금속 광택이 나는 것도 있다.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곳의 번식 전문가들이 계속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타 번식 전문가들은 인터넷 경매를 통해 자신의 물고기를 전 세계에 판매한다. 특히 베타의 고향인 태국에 번식 전문가가 많다.

베타는 강한 생명력을 지녀 비교적 키우기 쉽다. 그 이름이 ‘끈질긴(잘 죽지 않는) 물고기(ikan bettah)’란 말레이 방언에서 나왔을 정도. 특히 베타는 보통 물고기와 달리 수면 위의 공기를 직접 호흡할 수 있다. 논바닥과 같은 얕고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베타는 아가미 바로 위의 라비린스(labyrinth)란 보조 호흡기관을 통해 공기호흡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베타의 친척인 버들붕어가 살고 있다. 버들붕어도 공기호흡을 할 수 있다.

○ 지느러미 운동시켜야 꼬리 안 뭉쳐

최근 국내에서도 베타 사육이 활성화되고 있다. 동호인의 수와 그 전문성은 결코 무시 못 할 정도. 네이버에 있는 베타조아(cafe.naver.com/bettajoa) 동호회의 회원은 5700여 명에 이른다. 일부 동호인은 최고 100여 개의 수조에서 베타를 기르며 개인적으로 품종 개량을 시도하고 있다.

화려한 베타는 흡사 물속을 헤엄치는 꽃송이처럼 보인다. 베타는 싸움꾼이라는 인식 외에 아름다움 때문에라도 찬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민물고기 중 가장 화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의 베타는 오른쪽 위 두라미(베일테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프문테일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촬영 협조 대상열대어 이기종 베타조아 카페스태프 제공.
화려한 베타는 흡사 물속을 헤엄치는 꽃송이처럼 보인다. 베타는 싸움꾼이라는 인식 외에 아름다움 때문에라도 찬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민물고기 중 가장 화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의 베타는 오른쪽 위 두라미(베일테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프문테일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촬영 협조 대상열대어 이기종 베타조아 카페스태프 제공.
베타조아 매니저인 이한우 씨는 “회원들이 직접 종어(種魚) 수입을 추진하기도 하며, 전문성이 높은 회원의 경우 태국 현지에 단골 브리더(번식 전문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베타 사육의 핵심은 한 마리씩을 따로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수컷은 마지막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1963년 개봉한 영화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서 범죄조직 스펙터는 한 어항 속의 3마리 베타(Siamese fighting fish) 전략을 구사한다. 두 마리가 먼저 싸우고, 지켜보던 한 마리가 기진맥진한 승자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암수를 합사하는 것도 번식기 때 만이다. 그냥 두면 수컷이 암컷을 죽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화려한 꼬리가 뭉치지 않도록 운동을 시켜 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플레어링(flaring)이라 부른다. 플레어링을 위해서는 다른 베타를 보여주거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면 된다. 그러면 베타는 꼬리지느러미를 힘껏 펴고 위협 자세를 취한다. 단, 너무 오랜 시간 운동을 시키면 좋지 않으므로, 평소에는 다른 물고기를 보지 못하게 칸막이를 쳐줘야 한다.

베타는 좁은 공간에서도 사육이 가능하다. 공기호흡이 가능해 물속의 용존산소량이 적어도 되고, 수질오염에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잔같이 너무 좁은 공간에서 키우면 수질 악화로 피부병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마리당 최소 7, 8L 이상의 용기에 키우고, 스펀지 여과기를 이용해 노폐물을 걸러주는 것이 좋다. 여과기를 쓰지 않으면 매일 또는 2, 3일에 한 번씩 물을 부분적으로 갈아줘야 한다. 또 베타는 센 물살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베타의 수명은 보통 3년 정도다. 환경이 좋으면 5년까지도 산다. 수족관에서 파는 베타는 양어장에서 1년 가까이 키운 어른 물고기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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