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작가 “연극의 기본 고민하는 작품 아무도 안 나서 직접 맡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직접 쓴 ‘판 엎고 퉤!’로 연출 데뷔하는 김지훈 씨

“작품을 쓸 때마다 이전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쓰는 작품마다 독특한 색깔을 뿜어내 온 극작가 김지훈 씨가 올가을 연출가로 변신한다. 동아일보DB
“작품을 쓸 때마다 이전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쓰는 작품마다 독특한 색깔을 뿜어내 온 극작가 김지훈 씨가 올가을 연출가로 변신한다. 동아일보DB
요즘 연극판에 그처럼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이가 또 있을까. 2006년 시인에서 극작가로 변신했고 두 번째 작품인 2008년 작 ‘원전유서’(연출 이윤택)는 무려 4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에 그해 동아연극상 대상, 연출상, 극본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괴물 작가’로 불리는 김지훈 씨(32)다. 2009년 무대에 올린 ‘방바닥 긁는 남자’(연출 이윤주), 지난해 ‘길바닥에 나앉다’(연출 오동식)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신랄한 현실풍자를 담아내는 독특한 작품으로 관객과 평단 양쪽에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단 네 편의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그가 이번엔 연출에 도전한다. 첫 연출작은 ‘판 엎고 퉤!’. ‘방바닥 긁는 남자’ ‘길바닥에 나앉다’에 이은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올해 9월 공연을 목표로 17일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간판 배우인 김소희 씨와 윤정섭 씨가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는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만난 김 씨는 첫 연출 도전에 대한 소감을 묻자 “긴장감은 전혀 없다. 머릿속에 그림이 이미 다 그려져 있다.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재미있게 작업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엔 ‘허풍쟁이인가’ 싶을 만큼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지만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려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던 200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는데 2006년 생애 처음 희곡 ‘양날의 검’을 쓴 것이 극작가의 길로 이어졌다. ‘연극을 보고 평을 써오라’는 학교 숙제로 대학로에서 연극 한 편을 봤는데 형편없었다. ‘이 정도라면 내가 한번 써보지’ 싶어 보름 만에 후닥닥 쓴 작품이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작이 됐다. 심사위원이었던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씨는 “최인훈 이후 가장 한국적 정서를 잘 표현했다”고 극찬했고 이 인연으로 김 씨는 극단 전속작가가 됐다.

김 씨는 ‘원전유서’ 이후 작품부터 연출을 권유받았지만 고사해 오다 이번 작품엔 흔쾌히 응했다고 했다. 지난해 극단을 떠난 뒤 다른 팀들과 미발표 작품을 올리려 했는데 그의 희곡을 보고 ‘난해하다’며 연출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 ‘내 작품을 이해시키려면 내가 직접 연출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하지만 그는 ‘준비된 연출가’다. 지난해 10월 남산예술센터 상주 극작가로 선정돼 극단을 떠나기 전까지 이윤택 씨에게서 배우 음향 조명 등을 직접 해보며 혹독한 연출 수업을 받았다. ‘판 엎고 퉤!’의 내용에도 그런 연극의 기초를 바닥부터 쌓은 경험이 반영됐다. 극에서 배우들과 스태프가 반쯤 만들다 방치된 무대를 다시 세우면서 연극의 기본을 얘기한다. “조명과 음향 하나하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하자면 ‘연극의 기본’에 관한 거죠.” 그가 거침없는 시선으로 들여다볼 그 ‘기본’이 일찌감치 궁금해졌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