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축전 D-6개월]1000년의 향기,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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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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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준비에 부쳐

오! 팔만대장경

한 번 그음으로 화폭을 이루듯 한 번 침(一刻·일각)으로 해인사 봉안 팔만대장경판을 이루었다면 그 묘한 ‘한 번’의 근원에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속에서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의 불굴의 의지와 선진 문화민족으로서 방대한 기록유산을 집대성한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본다.

우리 민족은 천 년 전인 1011년부터 무려 77년에 걸쳐 인도에서부터 동아시아를 관통해온 트리피타카(경·율·론 삼장)를 국난 극복과 기록문화(인쇄·출판)의 계승과 발전의 완결판으로 ‘초조대장경판’을 조성해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했으나 아쉽게도 1232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이에 고려인은 1236년부터 16년에 걸쳐 초조대장경판 조성과 똑같은 정신과 연유로 다시 처음보다 더 완벽한 대장경판을 이루니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봉안된 재조대장경판이다.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조직위원장 경남도지사 김두관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조직위원장 경남도지사 김두관
여기서 우리는 대장경판 한 장 한 장, 글자 하나 하나에 숨겨진 우리 민족의 강인한 극복정신과 차원 높은 감성과 지성의 보장(寶藏)을 재해석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감동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시도의 실마리는 이미 고려의 고승 의천에 의해 잉태됐다.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 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086년 송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는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속장경을 정리 편찬하면서 자신이 대장경을 편찬하는 이유를 “천 년의 지혜를 정리하여 천 년의 미래로 전해주는 일”이라 적었다. 여기서 오늘의 대장경 천년세계문화축전이 착상돼 ‘과거와 미래의 만남과 조화’ ‘지혜와 기술의 만남’ ‘범인류적 화해와 관용’ ‘지역문화의 고유한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슬로건이 제시되었다.

여기서 고려대장경판에는 미래 천년으로 이어줄 어떤 지혜가 내재되어 있는지 두 가지를 살펴본다. 먼저 한마음(一心·일심)의 지혜다. 우리 선조들은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정신이 한 곳에 이르면 어떤 일이든 못 이루겠는가)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외쳤다. 대장경판에는 이러한 우리 민족에게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불굴의 한마음 정신이 스며 있다. 개인적으로 경판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일심으로 기운이 일깨워짐을 느낀다. 고려대장경판은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룩한 최고의 국난 극복의 산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 5200만 자가 넘는 대장경의 많은 글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음 심(心)’ 하나다. 즉 일심이다. 그래서 목판대장경의 조판 정신과 그 내용에도 한마음의 지혜가 담겨 있음을 보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이러한 우리 민족의 한마음 정신을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세계인이 와서, 보고, 느끼고, 기운을 담아갈 수 있도록 잘 이끌어야 할 것이다.

팔만대장경판 인경 모습. 사진제공 경남도
팔만대장경판 인경 모습. 사진제공 경남도
다음으로는 대장경판에는 경판 제작과 경판 새김, 그리고 보존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나무를 다루는 탁월한 안목과 판각 기술 그리고 신비로울 정도로 완벽한 자연친화적인 보존 방법의 지혜다. 이를 직접 와서 보고 체험하는 장이 여러 각도에서 시각화돼 과거의 장경각이 재미있는 현대판 디지털 장경각으로 태어나 내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대장경의 콘텐츠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겠지만 특히 위와 같은 경판의 제작, 새김, 인경, 보존에 있어 콘텐츠화는 과거와 현대의 소통과 더불어 역사를 문화적으로 소통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만큼 정보기술(IT)과 함께 사회적으로 다양한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미래 문화대장경의 핵심적 과제가 될 것이다.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목판 대장경판은 실로 목판 기록 문화의 꽃이요, 블랙박스다. 이를 잘 가꾸고 해독해 나가는 일환으로 개최되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에 국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 관암(觀庵)스님

1985년 해인사로 출가해 강원과 선원 수행을 거쳐 월간해인 편집장.
팔만대장경 보존실장 소임을 지냈다. 현재는 해인사 성보 박물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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