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둔황을 다녀 온 예술인 4人 천년의 석굴문화 위용에 고개가 저절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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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둔황석굴(막고굴)은 4세기 5호16국 시대부터 13세기 원(元)나라 때까지 형성됐다. 약 1000년 동안 축적된 문화의 정화(精華) 앞에 사람들은 전율을 느낀다. 둔황석굴을 체험하기 전과 후에 인생의 행보가 달라지기도 한다. 둔황석굴에 매료된 예술계 4인의 사연은 이렇다.

● 화가 서용 “천년의 스승들로부터 그림 배워”

1996년 베이징에서 연 개인전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화가 서용 씨(49·동덕여대 교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양을 맹목적으로 좇은 것 같은 자신의 화풍이 영 마뜩지 않았다. 답답함에 몸부림치다 1997년 3월 둔황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곳에서 그는 벼락같은 전율을 맞았다. “수백 개의 석굴 안에 있던 벽화들은 고대 화공의 손놀림과 1500여 년의 시간이 결합돼 이미 자연의 일부였다.” 손바닥만 한 그림에서도 현대 미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이함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후 그는 아예 둔황으로 거처를 옮겼다. 직접 끼니를 해결해가며 7년을 살았다. 기존 지식을 버리기 위해 벽화를 모사하는 작업부터 시작한 그는 “1000년 동안 벽화를 그려나간 화공들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 서양 화풍을 벗어나 둔황 벽화를 재해석한 창작으로 이름을 얻었다.

● 시인·소설가 윤후명 “둔황에서 ‘우리와도 연결된 세계’ 찾아”

1967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윤후명 씨(65)는 한국 문학의 소재나 사상이 너무 갇혀 있다며 대안을 찾는 데 고심했다. “우리의 정서, 우리의 문화와 맥이 닿아 있으면서도 세계와 닿아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실크로드와 혜초가 거기 있었다.” 1979년 소설가로 등단한 그가 1983년에 내놓은 소설이 ‘돈황의 사랑’이었다. 그도 수교 등의 문제로 가 볼 수 없어 둔황 관련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해 소설의 재료로 삼았다.

1991년에야 둔황에 가 볼 수 있었다. 가슴으로만 그리던 둔황에 도착해서는 감정에 북받쳐 술을 마시고 까무라쳤다. 그는 “‘세계와 연결고리를 찾던 나의 모습이 (둔황석굴의 형태로) 사막 한가운데 놓여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정이 격해졌었다”고 회상했다. 2005년 ‘둔황의 사랑’(문학과지성사)이라는 개정판을 내놓으며 둔황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 국악 작곡가·연구가 전인평 “둔황 벽화에 있던 장구 못 잊어”

관광객에게 개방되지 않은 굴이라 조명시설이 없었다. 안내원에게 돈푼깨나 쥐여주고 들어간 동굴에서 손전등을 이리 저리 비추며 30분을 헤맨 끝에야 겨우 장구 그림을 찾았다. 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66)는 1986년 둔황 98호굴 벽화에서 손전등을 비춰서 본 장구 그림을 잊지 못한다. “둔황에 가기 직전 인도에서 공부를 할 때 그곳에서 장구를 봤다. 둔황석굴 벽화에 있던 장구를 보니 글로만 배우던 음악 교류가 더 선명해졌다.” 그때 느꼈던 확신으로 음악교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사흘이나 둔황에 머물며 98호굴에 들어갈 궁리를 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컸다. “둔황과 인도 네팔에서의 공부는 각 지역 음악의 같음과 다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안목을 키워 주었다.” 전 교수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모아 ‘비단길 음악과 한국 음악’(1996년·중앙대출판부)을 펴냈다.

● 소설가 정찬주 “누워 있는 열반상의 미소에서 인생을 봤다”

소설가 정찬주 씨(58)가 처음 둔황석굴에 가본 것은 2000년 여름이었다. 베이징에서 세미나에 참석한 뒤에 여행 삼아 간 길이었다. 그때 158굴에 누워 있는 열반상과 인연이 닿았다. “열반상의 미소 속에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녹아있는 듯이 보였다. 죽을 때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열반상의 미소에 이끌려 다음 해에는 아예 사진을 찍는 후배와 동행을 했다. 그는 2001년 둔황석굴 방문 때 237호굴과 9호굴에서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삼국 가운데 한 사람이 조우관(새의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해 국내에 알리기도 했다. 자신의 여행기를 꼼꼼히 기록해 사진과 함께 엮은 기행문 ‘돈황 가는 길’(김영사)을 2001년 출간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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