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를 사랑한 소리꾼 “공연하며 결혼식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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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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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스타 박애리-힙합댄서 팝핀현준, 20일 백년가약

“저 사람은 진짜다.” “겉모습 깊숙한 곳에 예술혼을 지닌 예인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진가를 금방 알아보았다. 무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비보이 팝핀현준 씨(왼쪽)와 소리꾼 박애리 씨가 무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저 사람은 진짜다.” “겉모습 깊숙한 곳에 예술혼을 지닌 예인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진가를 금방 알아보았다. 무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비보이 팝핀현준 씨(왼쪽)와 소리꾼 박애리 씨가 무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평생 판소리를 했다. 늘 고운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서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을 도맡았다. 그녀의 삶이다. 늘 힙합댄스를 췄다. 화려한 무대에도 서봤지만 ‘그래 봤자 백댄서’라는 말은 어김없이 따라다녔다. 그의 삶이다.

쪽찐 머리와 노랗게 물들인 머리, 한복과 헐렁한 힙합바지.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비보이와 소리꾼이 무대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이제 무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국립창극단 단원 박애리 씨(34)와 힙합댄서 팝핀현준(본명 남현준·32)씨가 2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결혼한다. 지난해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뛰다, 튀다, 타다’에서 만난 지 약 10개월 만이다.

“누나(박 씨)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매니저에게 그랬어요. ‘봐라. 저 여자는 진짜다. 말투나 앉은 모습 전부 진짜다’라고요. 좋은 걸 가려내는 눈은 확실히 있거든요. 근데 매니저의 첫 반응은 ‘아, 형 왜 그래?!’였어요. 평소 주변에 있는 여자들과는 너무 다르니까요.”

“만나면 서너 시간씩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현준 씨 깊숙한 곳에 예술혼을 지닌 예인이 있다는 걸 느꼈죠. 또 자신의 춤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 흐르듯 자연스레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8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고 오는 길이었다. 20일 오후 1시 열리는 결혼식은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다. 무대에서 평생 살아온 이들인 만큼 ‘공연 속 결혼식’을 꾸밀 생각이다.

각자의 무대에 서느라 둘은 매일 밤늦게 만나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으로 데이트를 대신했다. 결혼식 사흘 전인 17일에도 박 씨는 또 다른 공연에 선다. 신혼여행은 4월 현준 씨의 미국 동부 지역 투어가 됐다.

박 씨는 “전 전통문화인 판소리를 했고, 현준 씨는 현대문화인 힙합을 했죠. 그런 두 사람의 결혼인 만큼 ‘전통과 현대가 만났다’는 내용으로 공연을 꾸미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의 결혼 장면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려 합니다. 어느 분이나 오실 수 있는 무료 공연이고 열린 결혼식”이라고 말했다.

무대 위의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빼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없는 편이다.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도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현준 씨는 “나는 삼류고 누나는 일류”라고 표현했다. “전 ‘쌈마이’예요. 소리 지르고 욕하고 뒹굴고, 사람들이 체면 때문에 못 하는 걸 무대 위에서 해 보이며 해방감을 주는 거죠. 누나는 달라요. 정말 아름답고 좋은 걸 무대 위에서 보여주며 감탄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죠.”

하지만 두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 ‘지음(知音)’을 만나 함께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건 몰라도 딱 하나는 약속했어요. 누나가 느껴보지 못한 ‘임팩트’ 있는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요.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요.”(현준 씨) “정말 그럴 것 같아요.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지잖아요. 결혼으로 연애가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거라는 생각에 너무나 기대돼요.”(박 씨)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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