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중앙동의 경사지 주택 스케치. 집 앞 경사로의 높은 지점에서 곧바로 2층에 들어갈 수 있게 해 고밀도 여건에 대응한 사례다. 자료 제공 아름지기
“도시의 상업화 때문에 한옥이 주거공간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고밀화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조건에 적응하지 못해 한옥이 스스로 도태한 일면도 있다.”
도시 주거의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 서촌(경복궁 서쪽 지역) 도시한옥 주거에 대한 세미나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급속한 상업화로 인한 공간의 변질을 고민하는 반복된 토론에 그치지 말고, 바뀐 환경에 맞도록 한옥의 유연하고 적극적인 변형을 실천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다. 주제발표에 나선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고밀도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사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변신의 방법을 찾는 것 외에는 한옥의 탈주거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나무와 흙 등 전통적 주재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공간을 수직적으로 집합시킨 복층 도시한옥의 절충 방식을 제안했다. 순수한 목구조만으로는 이층 공간에 흙바닥의 마당을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아래층은 평지붕의 양옥으로 만들고 그 위에 한옥 공간을 결합해 올리자는 것이다. 토론자로 참여한 조정구 구가도시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서울 서초어린이도서관에서 이와 비슷한 유형을 제안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경북 경주 양동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 등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급의 한옥만을 전통주거의 순수한 원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한옥은 애초에 원형이 고정돼 있던 주거형태가 아니라 이 땅의 생활상이 변하는 데 발맞춰 자연스럽게 진화해 온 건축양식이다.”
이상구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오랜 세월의 변화를 더께 쌓으며 변화해 온 흔적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이 지금 서울 도시한옥을 둘러싼 풍경을 편안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라며 “필요에 따른 공간의 변화는 유연하게 수용해야겠지만 상업적인 이유로 인한 급속한 공간의 변질을 제어할 정책적 장치도 더 늦기 전에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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