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남자 뒤에 숨은 ‘선사시대 여성’ 역할 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6일 03시 00분


◇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J M 애도배시오, 올가 소퍼,제이크 페이지 지음/김승욱 옮김/344쪽/1만6500원/알마

풍만한 몸매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알려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 저자들은 그동안 고고학의 남성중심 시각 때문에 비너스가 머리에 바구니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거나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는 점은 주목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풍만한 몸매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알려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 저자들은 그동안 고고학의 남성중심 시각 때문에 비너스가 머리에 바구니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거나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는 점은 주목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거대한 매머드를 사냥하고, 맹수의 습격을 막기 위해 밤이면 불을 피우고 일족을 지킨다. 우리가 흔히 그리는 구석기 시대의 모습이다. 여기서 간과되는 것 하나. 이 모든 행동의 주체는 남자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바구니 밧줄 직물 등 썩기 쉬운 공예품을 다루는 고고학자, 패션을 전공한 인류학자, 그리고 과학잡지 편집자다. 이들은 “남성이 대부분인 고고학자들이 돌로 만든 도구와 무기들만을 발굴해서 홍적세와 그 이전의 세계가 남자들의 세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그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선사시대 여성의 역할을 밝힌다.

인류는 왜 직립보행을 하게 됐을까. 저자들은 직립보행이 네 발로 걷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다는 이유를 든다. 임신과 출산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여성에게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직립보행은 여성에게 악조건이기도 하다. 두 발로 걸으려면 골반이 작아야 하는데 이 경우 출산 때 산도가 좁아져 출산이 어려워진다. 인류가 출산 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유일한 동물인 이유다. 보통 인류는 사냥을 위해 협동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다른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출산을 위한 협동은 인류 고유의 것이다.

저자들은 언어능력 역시 여성들로부터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동물처럼 어미에게 네 발로 매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엄마는 자식을 떼어놓고 채집활동을 했고 이때 아이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소리, 즉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흔히 농사는 남자들이 사냥이 어려워지자 다른 식량원을 찾아 나서며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들은 이런 시각에도 반론을 내놓는다. 아메리카 대륙 남서부에서 발굴된 농업 발생 시기 유골이 근거다. 남성들의 유골에는 먼 거리를 이동했음을 알려주는 흔적이 남아 있다. 여성들에게는 없었다. 남성이 여전히 바깥에서 사냥하는 동안 여성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여성은 인류의 등장과 성공을 이끈 동력으로서 남성보다 훨씬 중요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남자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여성과 남성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해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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