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애니’ 공개 오디션…뮤지컬 배우에 도전한 견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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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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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허둥대고, 주인은 속이 탄다. 뮤지컬 무대에 서기란 사람이나 개나 쉽지 않다. 뮤지컬 ‘애니’의 견공 배우에 도전한 개 11마리 가운데 결선에 오른 4마리가 최종 면접을 보고 있다. 오른쪽 개가 배우의 꿈을 이룬 다섯 살 래브라도 레트리버 ‘구름이’.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개는 허둥대고, 주인은 속이 탄다. 뮤지컬 무대에 서기란 사람이나 개나 쉽지 않다. 뮤지컬 ‘애니’의 견공 배우에 도전한 개 11마리 가운데 결선에 오른 4마리가 최종 면접을 보고 있다. 오른쪽 개가 배우의 꿈을 이룬 다섯 살 래브라도 레트리버 ‘구름이’.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리치야∼ 리치야∼.”

개 주인이 애처롭게 개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리치는 이에 아랑곳없이 오디션장을 휘젓고 다녔다. 작은 송아지만 한 리치가 돌연 방향을 틀어 한 여성에게 다가서자 “엄마야∼” 하는 비명이 나왔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 12월 16∼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애니’에 출연할 견공(犬公) 오디션이 열렸다. 이 작품은 따스한 마음을 가진 고아 ‘애니’가 냉정했던 백만장자의 양녀가 되는 과정을 훈훈하게 그린 가족극. 견공이 맡을 역할은 ‘샌디’다. 길거리를 떠돌다가 ‘애니’를 만나 둘도 없는 반려동물이 되는 중요 배역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은 2006, 2007년 공연에서 샌디 역을 맡았던 골든 레트리버 ‘쵸이’가 고국인 뉴질랜드로 돌아가자 이번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 골든 레트리버, 그레이트 피레네 등 명문 혈통을 가진 개 11마리가 이날 뮤지컬 배우에 도전했다.

주요하게 고려된 심사 사항은 개의 무대 적응력. 귀청이 터질 듯한 큰 노랫소리를 갑자기 틀어 개가 짖거나 흥분하는지, 또는 모든 불을 꺼 컴컴하게 만든 뒤 개가 돌발행동을 하는지 살폈다. 대부분의 개가 이런 심사는 무난히 마쳤지만 “앉아” “이리 와” “엎드려” 등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자 말을 듣지 않으면서 민망한 상황이 속출했다. 낯선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탓으로 보였다.

개 주인을 상대로 꼼꼼한 면접도 진행됐다. 서울시뮤지컬단 이지향 기획제작감독은 “개가 헉헉거리며 더워하는데 무대에 서면 조명 때문에 더 더울 텐데요”라거나 “샌디는 빈민가의 떠돌이 개 역할인데 (면접 온) 개가 너무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일일이 지적했다. 이 감독이 7세인 골든 레트리버 ‘뭉치’의 개 주인에게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아닌가요”라고 질문하자 당황한 개 주인이 “그 정도는 아니고 한 60 정도”라고 답해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오디션에 왜 지원했을까. 7세 골든 레트리버 ‘쿠키’의 주인인 강연희 씨는 “애(쿠키)하고 같이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견훈련학교에서 개를 70마리 키우고 있다는 김영민 씨는 개들을 TV, CF에 출연시켜 적지 않은 수입도 올린다고 했다. “하루 CF 촬영에 최고 800만 원까지 받은 적도 있다. 보통 하루에 CF는 300만∼400만 원, 드라마는 50만 원 내외를 받는다”고 김 씨는 말했다. 이번 뮤지컬 ‘애니’의 출연료는 CF나 TV 출연보다는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심사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5세 래브라도 레트리버인 ‘구름이’가 낙점됐다. 털이 짧은 것은 단점으로 지적됐지만 집중력이 높아 말을 잘 따른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에 참여한 김덕남 연출가는 “오디션이 쉽지 않았고 기대에 완벽히 부합하는 개를 찾기도 힘들었다. 캐스팅이 끝난 만큼 이제 연습에 전념하겠다”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만∼5만 원. 02-399-1114∼7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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