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男들이 모르는 237가지 女 性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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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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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 데이비드 버스 지음·정병선 옮김/408쪽·1만8000원/사이언스북스

밤일을 보채는 마누라와 그런 마누라를 피하는 남편, 도도하던 여자가 하룻밤을 지낸 후 돌연 남자에게 매달리는 사연, 뻣뻣한 본처가 허리 아래 일에 능한 직업여성에게 남편을 빼앗긴 이야기, 남성은 섹스를 좋아하지만 여성들은 로맨스를 꿈꾼다, … 등등 여성의 성과 관련된 담론들은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채 세간을 떠돈다. 대개는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화되어 저급한 농담거리로나 취급되기 십상이다. 성과 관련된 여성들의 주관적 체험이 담긴 솔직한 담론이 공적 세상에 등장한 역사가 짧은 탓도 크다.

그러나 실제로 임상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고민은 그와 같은 신화들과 거리가 먼 경우가 적잖다. 이 책에서처럼 ‘남편과 성관계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성관계를 원하는데 배우자는 거부한다’ ‘섹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혹은 혼자 있는 것이 싫어서 그냥 한다’ 같은 고민에서부터 최근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클럽에 가서 하룻밤 상대를 찾는다’ ‘남편은 싫지만, 섹스 파트너를 찾아 밖에서 헤매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냥 산다’ 등과 같이 과거와는 다르게 솔직하게 성욕을 표현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얼핏 보면 휴게소나 편의점에서 심심풀이로 읽을 법한 제목과는 다르게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는 각 개인의 내밀한 사연들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여성의 성과 관련된 심리와 행태에 대한 다양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제공해 준다. 성을 무기로 남성들을 유혹하고 조종하고 싶어 하는 교묘한 속임수에서부터, 성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 긍정적 체험 등등 여성이 성을 단순히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보지만은 않는다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 책은 다양한 민족, 다양한 연령,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1000여 명의 여성이 들려준 실제 경험담을 여성들과의 직접 설문을 통해 조사하고, 과연 무엇 때문에 여성이 섹스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심리학, 진화심리학, 생리학, 정신의학의 방법들을 통합적으로 사용해 풀어냈다.

여자는 왜 섹스를 할까. 이 책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대답 대신 실제 여성 1000여 명의 경험과 심리학, 정신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답을 내놓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여자는 왜 섹스를 할까. 이 책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대답 대신 실제 여성 1000여 명의 경험과 심리학, 정신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답을 내놓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37가지 이유 중 ‘성적으로 끌려서’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애정을 증명하기 위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싶어서’ ‘파트너를 만족시키기 위해’ 같은 상상 가능한 이유들이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지만, ‘복수하기 위해’ ‘두통을 없애려고’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 위해’ ‘직업을 얻기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신께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벌주기 위해’ ‘섹스를 하면 돈을 준다기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고’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니 보통 남자들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이유들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육체적 즐거움이나 성적 만족, 또 섹스를 통한 물질적 획득의 즐거움 등이 실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결과는 ‘여자들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섹스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시 한다’는 낭만적 신화가 시대착오적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고귀한 로맨스를 과대 포장했던 과거의 기사도 정신이나 솔 메이트에 대한 환상도 여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억압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혹 아니었을지. 어쨌든 섹스는 섹스일 뿐. 여성이건, 남성이건, 무엇이 그리 다르겠는가.

특히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이론이 아니라 호르몬과 뇌세포의 변화에 대한 의학적 증거를 담은 이론들을 일반인도 읽기 쉬운 어조로 풀어 놓은 점이 돋보인다. 섹스와 관련된 정신치료에 대해서 낯설어 하는 일반인에게 후반부의 ‘섹스 치료’ 장도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류학과 정신의학의 임상연구 방법을 이용해 사례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기술하다 보니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머릿속에 들어오기보다는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또 개개의 사례를 더욱 심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부분도 지적할 만하다. 담으려던 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 쉽고 단순한 결론을 기대하는 일반 독자에게는 덜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도 든다. 그러나 여성의 성에 대해 학문적으로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고급 독자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들의 결론대로 여성의 성은 복잡하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237가지 이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만 해도, 죽고 싶은 생각을 잊기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 도덕과 순결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 섹스를 하고 나면 요통과 골반통이 사라진다는 사람,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례 등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또 다른 목소리들을 그동안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만큼 성은 일반화, 계량화, 통계화하기 힘든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기에 의식에서는 표현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는 것이다. 지구의 45억 인류의 인생은 하나하나 다 특별하니까.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융 분석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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