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목사님, 스님의 손을 맞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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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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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교회 손인웅 목사 “갈수록 영혼은 목말라 갑니다”
길상사 주지 덕현 스님 “그 아픔, 종교가 보듬어야죠”

2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를 방문한 손인웅 덕수교회 담임목사(왼쪽)가 대웅전 앞의 연등 아래서 주지 덕현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홍진환 기자
2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를 방문한 손인웅 덕수교회 담임목사(왼쪽)가 대웅전 앞의 연등 아래서 주지 덕현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홍진환 기자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동네에 있는 덕수교회 손인웅 담임목사(68)가 난을 들고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러 온 것이다. 길상사 주지 덕현 스님(46)은 절 입구까지 나와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성북동 이웃인 덕수교회, 길상사, 성북동성당은 종교 간 화합의 모범으로 꼽힌다. 교회와 성당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신 날에 축하 플래카드를 걸고, 성탄절에는 절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현수막을 건다. 2008년부터 2년째 공동 바자를 열어 지역 청소년을 돕는 장학사업도 벌인다. 성북동성당 여인영 주임신부도 자리를 함께하려고 했지만 감기몸살로 참석하지 못했다. 손 목사와 덕현 스님이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주제로 다담(茶談)을 나눴다.
▽손 목사=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함께하는 날입니다.

▽덕현 스님=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종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손 목사=문명이 발전할수록 영적 갈망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덕현 스님=지난 몇 세기 동안 사람들은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편적 진리를 말해온 종교에 더 주목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종교에서 희망을 찾도록 종교지도자들이 더 깨어나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야 합니다.

▽손 목사=성직자가 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습니다만 더 충실해야 합니다. 목사가 되려면 신학대학원 3년, 지역 노회에서 2년간 인턴 과정을 거쳐 목사 고시를 봅니다. 고시에 합격해도 청빙하는 교회가 없으면 목회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덕현 스님=승가 교육 과정이 현대 사회를 담아내는 데 부족함이 많습니다.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제대로 종교를 알릴 수 있습니다.

▽손 목사=요즘 출가자들이 많이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기독교도 목사 지망생은 적지 않지만 문제는 자질입니다.

▽덕현 스님=물질적으로 윤택해지면서 근원적 진리에 대한 탐구 욕구가 약해졌죠. 인생과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으려 하지 않습니다. 청정과 가난, 독신에 대한 부담도 큰 것 같습니다.

▽손 목사=종교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힘써야 합니다. 먼저 종교끼리 모범을 보여야죠.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에도 평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종교마다 도그마가 있지만 서로 존중하고 사랑, 정의, 평등 등 공유하는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덕현 스님=목사님이 바자를 먼저 제안하는 등 화합에 앞장서서 성북동 분위기가 좋습니다. 올해 바자는 길상사가 주관하는데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많습니다. 성심성의껏 준비하겠습니다.

▽손 목사=스님, 신부님이 흔쾌히 응해주신 덕분입니다. 기독교단의 연합과 일치 운동을 해왔습니다. 종교 간의 화합도 같은 맥락입니다. 공동음악회 등 앞으로 같이할 행사를 더 많이 구상 중입니다.

▽덕현 스님=종교 간 화합과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활동에 앞으로도 함께하겠습니다.

덕현 스님은 손 목사의 난 화분에 대한 답례로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선물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전국 사찰 2만여 곳 봉축법요식▼

부처님 오신 날인 21일 전국 사찰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날 오전 전국 사찰 2만여 곳에서는 일제히 봉축법요식이 열린다.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灌佛)의식과 연등행렬도 이어진다.

절을 찾는 모든 이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한다.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는 조계종 최고 지도자 종정 법전 스님, 총무원장 자승 스님, 불자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법요식을 봉행한다. 서울 봉은사와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는 23일까지 연등 전시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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