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성찬-장은의 김치전쟁, 어머니 손맛 재현이 승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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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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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객’ 음식감독 김수진 원장의 김치이야기

이번에는 김치다. 돌아온 영화 ‘식객’의 부제(副題)는 ‘김치전쟁’. 마음을 움직이는 식객(食客) ‘성찬’과 세계적인 천재 요리사 ‘장은’이 벌이는 김치의 향연이 관객의 오감은 물론 손맛의 원초적 향수까지 자극한다.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김치는 어림잡아 100여 종이나 된다. 이들 김치는 주인공들의 칼끝에서 화려하게 탄생되지만, 진짜 손맛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영화의 음식감독을 맡은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수진 한류한국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이 그다. 2007년 개봉한 전편 ‘식객’은 물론 ‘왕의 남자’ ‘쌍화점’ 등에서도 음식을 연출했다. 지난해 3월부터 8개월간 사투를 벌였다는 김 원장의 ‘김치전쟁’ 이야기를 들어봤다.

#1. 백의민족


영화는 3차례에 걸친 김치대회를 축으로 한다. 그 첫 번째 대회는 ‘백의민족’. “한반도에 고추가 들어온 건 17세기 이후죠. 빨간 양념 김치는 최근에서야 만들어진 김치고, 우리 김치의 시초는 소금이나 장을 이용한 절임이었어요. 그래서 첫 대회의 주제는 백의민족. 고추를 쓰지 않은 김치를 만들어내야 했죠.”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김치가 성찬의 ‘검들장 김치’와 장은의 ‘콜라비 김치’다.

“성찬의 김치로 간장에 절인 무김치를 만드는데, 문제는 영화 속 동선이었어요. 음식 만드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너무 단순했던 거죠.” 김 원장은 그림이 될 만한 재료를 다시 골랐다. 알알이 칼집을 넣을 수 있는 총각무가 선택됐다. “총각무를 하나하나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칼집을 내는 장면들이 연출됐죠. 캐릭터에 맞게 성찬은 무 껍질도 칼이 아닌 숟가락으로 긁어 벗기고요.” 여기에 함초를 넣고 간장에 절였는데 실제로 기대 이상의 맛과 풍미를 내는 김치가 완성됐다. 무를 소금에 절여 만드는 검들 김치와 간장을 조합해 검들장 김치라고 이름도 붙였다.

콜라비 김치는 장은의 캐릭터를 반영해 만든 퓨전 김치다. “세계적인 요리사인 만큼 평범하지 않은 식재료가 필요했어요. 양배추와 순무를 교배시킨 자주빛의 콜라비가 딱이었죠. 여기에 콩물을 가미했어요.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나박김치를 콩물로 담그기도 하거든요.” 김 원장은 그렇게 콜라비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콩물을 이용한 물김치 스타일의 김치를 만들어냈다.

#2. 아침의 나라

2차 대회에서도 장은은 퓨전김치를 선보이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테크닉과 뛰어난 맛을 보여줘야 했다. “주제가 아침의 나라였어요. 수평선 위로 발갛게 떠오르는 둥근 태양을 연상시키는 김치를 만들고 싶었어요. 재료란 재료는 모두 늘어놓고 고민을 거듭했죠.” 김 원장이 당시 고생이 떠오르는 듯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우선 둥근 태양을 상징하기 위해 양파를 택했다. 조각 전문가까지 초빙해 양파를 꽃잎처럼 조각해 펼치고, 황태와 노각(늙은 오이)을 이용해 속을 채웠다. 연한 고춧가루 물에 띄운 ‘양파 황태 김치’는 아름답기까지 한 디자인으로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다. 성찬은 경북 영덕 바다까지 나가 직접 잡은 대게를 활용해 김치를 만들었다. “영덕에서는 대게로도 김치를 만들어 먹어요. 배추 잎 사이사이에 대게 다리를 넣어 만드는 거죠. 이번 영화에서는 배추는 빼고 대게 몸통에 갖은 양념의 무채 속을 넣어 만들었어요.”

#3. 어머니의 손맛

성찬과 장은이 최종 격돌하는 3차 대회의 주제는 ‘통배추 김치’다. 이색적인 재료, 화려한 테크닉 등은 배제된 채 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해 낸 이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김 원장은 “우리 전통 음식을 제대로 알아야 세계에서 통하는 퓨전 음식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음식의 경쟁력을 위해 맛뿐만 아니라 스타일에도 무게를 둬야 한다”고 힘을 줬다. 이 같은 김 원장의 철학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데 주인공 장은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김치를 대접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오이롤 김치, 오징어말이 김치, 쪽파 김치, 가자미식해 김치 등 우리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김치가 외국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카나페 스타일로 대거 등장한다. 영화는 우리의 김치도 눈이 즐겁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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