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신 PD의 반상일기]‘이세돌 복직’ 한국바둑 윈-윈 계기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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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데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세돌 9단이 17일 한국기원에 복직원을 제출했다. 1년 6개월간의 휴직을 선언하고 바둑계를 떠난 지 정확히 여섯 달 열흘 만에 컴백 선언을 한 것이다. 복직원을 받아 든 한국기원이나 ‘왕의 귀환’을 갈망하던 팬들은 환영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 9단의 복직원 제출이 곧바로 복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원 이사회의 승인이라는 형식적 절차 외에도 몇 가지 선결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7월 이 9단의 휴직을 수락하면서 이 9단 사태가 기원 규정의 미비 때문이라고 보고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사회는 10월 개선안을 의결했다.

그 핵심 중 하나는 랭킹 10위 내의 기사는 한국바둑리그를 포함해 총규모 기준 국내 상위 5개 기전에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국바둑리그 출전 기사들이 기사회 발전기금으로 중국팀에서 받은 수입의 5%를 기사회에 납부하는 것을 명문화했다. 이 두 가지 모두 이 9단 사태의 불씨가 됐던 내용이었다. 한국기원은 이 9단의 복직을 허용할 때 이 규정을 준수할 것인지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 규정들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지금 따지지 않았으면 한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규정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반성과 상호 간의 의지다. 그동안 분쟁의 불씨는 약속의 위배보다는 약속 자체의 불명확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이 9단이 기사회 발전을 위한 기금을 내기 싫어했다거나 한국바둑리그를 참가하지 못할 대회로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엔 명확한 규정과 절차가 만들어진 만큼 모처럼 찾아온 해빙의 기운을 살려나가야 한다. 작은 불씨도 남겨두지 말고 돌다리를 두드리듯 2009년에서 2010년으로 건너가야 한다.

1인자일수록 지킬 것은 지키고, 아픈 만큼 성숙해져 돌아오는 동료를 따듯하게 맞아들이는 기사들의 모습. 이 모두가 새해 벽두에 현실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 9단의 공백으로 한국 바둑계는 올 하반기 세계대회에서 중국세에 밀리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 9단도 국수전 타이틀을 반납하고 랭킹 1위에서도 물러나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한국기원도 이 9단 휴직 전후로 사태를 해결할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해 지탄을 받았다. 모두가 지는 게임을 한 것이다. 이 9단의 컴백이 빨리 마무리돼 불신의 장벽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한국 바둑호가 윈윈 게임을 하길 희망한다.

이세신 바둑TV 편성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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