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신 PD의 반상일기]난제 수북한 한국 바둑계… 40대 리더십의 묘수 기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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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241명의 평균연령은 36세로 여느 체육 종목보다 높은 편이다. 73세의 최창원 6단부터 갓 입단한 17세의 김나현 초단까지 삼대가 한솥밥을 먹는 것도 두뇌 스포츠인 바둑의 특징이다. 세대 간 편차가 큰 만큼 바둑계에서 나이는 상당한 권위를 지녀왔다. 책임 있는 자리들은 선배 기사들에게 집중됐고 40대까지도 젊은 축에 속했다. 최근 두 40대 기사가 바둑계의 전면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양재호 9단(46)은 12일 최초로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여자바둑은 중국에 비해 확실한 열세에 놓여 있고 선수 개개인의 실력 편차도 크다.

앞으로 팀 구성이나 운영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둑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양 9단으로서는 감독직 수락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양 9단은 당장 12월 20일 열리는 제8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대회 2회전에서 급한 불을 꺼야 한다. 정관장배는 한중일 3국의 여성기사가 5명씩 출전해 연승전 방식으로 우승을 가리는 대회. 한국은 1회전에서 연패해 3명만 남았다. 코앞에 닥친 이 대회에서 신임 감독의 마법을 요구하기는 무리지만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참극을 피해야 한다. 또 내년 이맘때 그는 한국 여성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경기가 열리는 중국 광저우로 가야 한다. 아시아경기 바둑 종목 금메달은 남녀 단체와 혼성페어 등 3개. 여자대표팀의 활약이 전체 금메달 무게의 절반을 감당해야 한다. 그만큼 양 9단의 부담도 크다.

17일에는 제29대 기사회장으로 최규병 9단(46)이 선출됐다. 이번 선거는 4명의 후보가 나와 투표율 73%라는 높은 호응 속에 치러졌다. 선거 열기가 뜨거웠던 것은 최근 바둑계가 처한 난관에 대한 기사들의 공감대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영광은 중국의 거센 위협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고 기사들이 뛸 무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한체육회 가맹을 계기로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통합이 내년 초 예정돼 있어 어느 때보다 기사회의 현명한 대처와 응집력이 필요한 시기다.

기사회장은 행정적 실권은 없지만 한국기원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사회는 기사회의 건의를 대부분 수용해 왔기 때문이다. 최 9단은 “뒤에서 조용히,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양 9단과 최 9단은 책임감이 강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기사들이다. 앞으로 한국 바둑의 위상 회복이나 팬과의 교류 확대 등 바둑계 현안들이 힘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간 허리층인 40대가 참모가 아니라 전면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한국바둑 위기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궂은일을 자임하고 나선 이들의 결단이 열매를 맺기 바란다.

이세신 PD 바둑TV 편성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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