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시로 구현한 당대의 서정시인이었던 미당 서정주(1915∼2000). 친일 행적과 5공화국 정권 지지 등으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돼 왔던 미당.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당의 문학적 성취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과거 행적 논란으로 ‘문화적 유폐’ 지난 10년 단점만 지나치게 부각 객관적으로 문학 성과 살펴봐야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 교수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은 20일 서울 문학의 집에서 ‘미당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를 가졌다. 이 사업회의 총무이자 미당의 제자인 동국대 윤재웅 교수(사진)는 “이제는 미당을 좋아하고 기리는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서 공정한 재평가를 내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28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미당 서정주가 재평가돼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만년 서울 관악구 남현동 고택에 칩거하던 시절의 미당 서정주.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돼 등단한 뒤 60여 년 동안 시작 활동을 했던 그는 한국시문학의 거장이자 이원섭 이제하 황동규 등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문단 원로였으나 친일행적 등이 부각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0년대 이후로 미당에 대한 평가는 일방적인 내리막길이었다. 말년에는 거의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칩거하셨다. 문화적 유폐였다. 정치적으로는 지난 10년간 문단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진보 진영에 의해 미당의 단점이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돼 왔다. 미당의 재평가란 것은 맹목적인 추앙을 뜻하는 게 아니다. ‘서정주=친일파’라는 일방적 시각에서 벗어나 대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덮여 있던 것들을 이제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펼쳐봐야 한다.”
―미당기념사업회에 대한 구상은 언제 시작됐나.
“구상은 오래됐지만 그럴 수 없는 분위기였다. 문학제나 시문학관 개관 기념행사라도 하려고 하면 일부 단체에서 강하게 반발했고 지자체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지금은 사회적인 분위기나 여론이 좋아졌다. 전북 고창 주민도 고창국화축제, 질마재문화축제 등 미당 관련 행사들을 반기고 군에서도 적극적이다. 시기적으로는 내년이 미당 선생의 10주기다. 여건이 무르익었다.”
―미당을 둘러싼 우여곡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고택 봉산산방인 듯한데….
“2001년 서울시에서 고택을 사들이려고 하자 친일파 집을 보존한다고 난리가 났다. 대시인이 30년간 살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집 한 채인데 그 보존을 반대했다. 서울시와 관악구가 서로 미루고 떠넘기다 폐가로 방치돼 시간만 흘러갔다. 이제는 보존이 확정됐으니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고창의 미당시문학관과 동국대에 분산된 미당 선생의 유품 중 일부도 그곳에 전시해야 한다.”
남현동 고택은 미당이 타계한 뒤 10년 가까이 폐가 상태로 방치됐으나 관악구는 올해 말 보존을 위한 개보수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시인이 30년간 살았던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인 ‘미당 서정주의 집’으로 내년 말 새롭게 문을 연다.
―앞으로 미당기념사업회가 다룰 현안은 어떤 것인가.
“미당이 대단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미당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7차 교육과정 개정으로 서정주란 이름이 중고교 국어교과서에서 모두 사라진 뒤부터 서정주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도 많다. 미당 문학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2월 23일 발족식을 한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조직위원회와 회칙을 꾸리고 미당전집과 미당문학사전 출간, 미당학회 발족 등을 준비할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친일詩-신군부 지지로 비판… 기념사업들도 찬반 논란에▼ 미당은 평생의 시업(詩業)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말 발표한 친일시와 신군부 지지의 행적으로 논란을 불러왔다. 2001년 고은 시인은 ‘미당 담론’을 통해 스승이었던 미당의 삶과 문학을 비판했다. 이후 이를 둘러싼 문단 내 찬반 논쟁은 미당의 시세계에 대한 상반된 평가로 나타났다.
미당의 문학과 삶을 기리기 위한 사업들도 논란을 낳았다. 2001년 전북 고창군에 건립된 미당시문학관에는 일부 단체의 요구로 현재까지 친일시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2007년에는 동국대 주최로 ‘미당의 친일문학-식민지 문인의 내면과 친일의 정신구조’란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친일인명사전 문학부문 수록 예정자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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