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산삼 뭔지 모르고 그렸는데… olleh! 광고 심봤다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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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올레광고 원화작가 마이클 밀러 씨 e메일 인터뷰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철가방’이 뭔지 몰랐어요. 중국 음식을 철로 만든(!) 이상한 가방에 넣고 집까지 배달해 준다니, 제가 그림을 그리긴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한국에 와서 ‘철가방’ 배달 광경을 보니 미국도 꼭 도입해야 할 유용한 시스템 같던데요.”

올해 상반기(1∼6월) 광고업계 최대 이슈는 단연코 KT의 기업 광고 ‘올레(olleh)’였다. 멜빵을 멘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자 한번에 쩍 갈라지는 나무, 나무꾼은 그 광경엔 그저 ‘와우(wow)’라고 말하지만 넘어지는 나무에 멧돼지가 깔려 죽자 화들짝 놀라며 ‘올레(olleh)’라고 외친다. 불쌍한 멧돼지는 바로 뜨거운 불 위에서 통구이가 된다.

이 작품을 1편으로 시작한 KT 올레 광고 시리즈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스페인어로 ‘만세(bravo)’에 해당하는 ‘올레(ole)’에서 착안한 작명뿐 아니라 재미있는 구성과 ‘어색한’ 원화 그림 덕분에 누리꾼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당초 9개 에피소드로 끝날 예정이었던 광고 시리즈는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5가지 에피소드를 추가 제작해 총 14편까지 방영됐다.

이 광고가 더욱 인기를 얻었던 것은 한국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는 그림 때문이었다. ‘각이 진’ 얼굴의 한석봉과 서구적인 체형의 선녀들을 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그림을 일부러 어색하게 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생겼다. 이 광고 원화(原畵)를 그린 사람은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마이클 밀러 씨(35). 동아일보가 밀러 씨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한석봉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국 사극 드라마까지 받아서 시청했어요. 조선시대 의복이나 생활양식은 외국 사람이 그림 몇 장 보고 자세히 그리기엔 너무 힘들었거든요.”

밀러 씨는 9편의 올레 광고 원화를 그리며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꼽았다. 실제 이 광고 소재 중에는 ‘한석봉과 어머니’, ‘선녀와 나무꾼’ 등 한국의 전통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가 가장 그리기 힘들었던 것은 ‘보물찾기’ 편. 다른 아이들이 소풍을 갔다 선생님이 숨겨 놓은 ‘보물’을 찾고 즐거워하는 동안 엉뚱하게 100년 묵은 산삼을 발견한 한 어린이 이야기다. 밀러 씨에게 이 시리즈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실제 산삼을 보지 못한 채 원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밀러 씨는 산삼을 그리기 위해 ‘실물’을 보내달라고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에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노’. 너무 비싸서 보낼 수 없다는 답변에 그는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을 보고 산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어색하게’ 그렸다는 의혹은 어떨까. 이건 절반의 ‘예스’다. 이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측은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한국의 전래동화 이야기를 서양인의 그림체로 보니 더 재미있고 특이하다는 평이 많았다”며 “처음에는 밀러 씨가 보내주는 대로 원화를 받았지만 추가분을 제작할 때는 일부러 ‘각이 있는’ 미국식 만화체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작가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광고 소재로 그는 고민 없이 ‘여름 캠프’ 편을 꼽았다. 아이가 혼자 캠프를 떠날 때 ‘와우’를 외치던 아빠들이 엄마와 아이가 같이 여름 캠프를 떠나자 ‘올레’를 외치며 뛸 듯이 기뻐하는 시리즈다. 밀러 씨는 “세계 어느 나라든 남자들이 생각하는 건 거의 비슷하다고 느껴져 저절로 웃음이 나와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밀러 씨는 현재 미국의 한 광고대행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그동안 스포츠 브랜드 푸마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메신저서비스인 MSN의 광고 일러스트 등을 작업했다. 제일기획이 KT 광고 원화가로 그를 낙점한 것도 2년 전 푸마 광고의 일러스트 때문이다.

이번 작업으로 그는 ‘보너스’도 두둑하게 챙겼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물론 밀러 씨가 일도 열심히 했지만 두 달의 작업기간 동안 연봉 이상의 수당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성공으로 현재 일하는 광고대행사 대신 아예 프리랜서 원화가로 일해볼지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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