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내 가이드는 로맨틱가이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27일 개봉하는 ‘나의 로맨틱 가이드’의 원제는 ‘My life in ruins’, 즉 ‘폐허 속 내 인생’이다. 고지식한 고고학 박사 조지아(니아 바르달로스)의 삶도 영화 제목처럼 삭막한 황무지. 대학 강단에서 그리스 역사를 강의하려던 꿈은 물 건너갔고, 생계를 위해 시작한 여행가이드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못 다 이룬 꿈을 이루려 여행객들에게 그리스 역사를 가르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늘 ‘보통’이라는 평균점수다.

이 영화를 만든 도널드 페트리 감독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미스 에이전트’를 만든 로맨틱 코미디 전문 감독. 이 영화 역시 똑똑하지만 연애에 젬병인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다. 얼굴 전체에 수염을 길러 ‘변태 털북숭이’로 불린 운전사 푸피 카카스(알렉시스 게오르굴리스)가 알고 보니 ‘훈남’에 영어도 잘하는 ‘능력남’이라는 설정이나, 좌충우돌 끝에 연애와 일을 쟁취하는 결론도 어디서 본 듯하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충실히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가 뻔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대화 곳곳에 숨어있는 느긋하면서 재치 넘치는 유머 때문이다. 때로 저급한 농담들과 썰렁한 몸 개그가 극의 흐름을 깨긴 하지만, 여행이라는 상황과 맞물리며 잔재미를 더한다.

제멋대로인 줄 알았던 여행객과 조지아의 관계 맺기를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위기의 부부, 유전병으로 늘 저기압인 딸, 남자 만나러 온 이혼녀 그리고 귀도 안 들리고 거동도 불편한 노인…. 조지아와 함께 떠나는 길목마다 사사건건 참견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번 여행을 끝으로 가이드 일을 접을 생각이었던 조지아도 철옹성처럼 단단히 쌓았던 벽을 허문다.

그리스의 이국적 풍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테네 델포이 등 유명 관광지와 다른 영화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아크로폴리스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맘마미아’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 이어 배우 톰 행크스가 제작한 그리스 배경의 코미디 세 번째 편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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