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포장 학예사…종갓집 종부…‘틀’을 거부하는 사람들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 장미나무 식기장/이현수 지음/288쪽·1만 원·문학동네

한 달에 한 번꼴로 여자를 사는 남자. 하지만 이 남자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포장 전문 학예사인 남자는 손의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려 한다. 여자를 사는 것은 손목, 손등, 손끝, 손가락뼈가 고유한 촉감을 기억하도록 하는 훈련의 일종.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꼼꼼히 팩을 해 야들야들한 손바닥을 유지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그는 손을 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맹세했다. 다른 모든 것 대신 손 하나 만으로 존재하려는 남자다.(‘녹’)

중견 소설가 이현수 씨가 두 번째 소설집 ‘장미나무 식기장’을 펴냈다. ‘손’이란 특정 부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학예사부터 호주제, 부동산 투기, 기러기 아빠, 종갓집 종부 등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회 속 개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군살 없이 단단한 문장 속에 담아냈다. ‘모성’의 전형성을 벗어던지는 다양한 어머니가 등장하는 것은 이번 작품집의 특징 중 하나. 과부로 대를 이어온 안동 권씨 집안의 규율을 깨부수고 서슴없이 살았던 어머니가 등장하는 ‘추풍령’, 고향과 가정을 등지고 미제 물건 장수와 어음할인 등을 해 주식의 귀재로까지 소문나게 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등이 대표적이다.

가족을 모두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불안하고 외롭게 지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태중의 기억’, 여덟 살 어린 애인 때문에 종부가 될 처지에 놓인 여인의 결단을 다룬 ‘남은 해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 되는 것들의 목록’ 등도 실려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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