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냉정과 열정사이’ 두 작가, 10년만에 공동집필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좌안-마리 이야기/에쿠니 가오리·김난주 옮김/408쪽∼424쪽(전2권), 각 권 10000원·소담출판사

◇우안-큐 이야기/츠지 히토나리 지음·양억관 옮김/340쪽∼360쪽(전2권), 각 권 10000원·소담출판사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10년 만에 다시 한 번 공동 집필했다. 두 작가가 두 권씩 쓴 이 소설은 운명적으로 얽힌 두 남녀에 관한 이야기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와 보편적인 감수성으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 여성 독자들에게도 각광받는 에쿠니 가오리는 여자 주인공 마리가 살아온 50년의 일대기를 ‘좌안-마리 이야기’(전 2권)에서 자금자금 풀어낸다. 쓰지 히토나리는 마리와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주인공 큐의 파란만장한 삶을 ‘우안-큐 이야기’를 통해 색다르게 그려냈다. 공동 집필, 두 남녀의 재회라는 테마는 전작과 흡사하다. 하지만 헤어졌던 젊은 남녀 주인공이 10년 뒤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그린 전작이 연애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두 주인공의 인생에 방점이 찍힌다. 어릴 적 친구였던 두 남녀가 다시 만나기까지 50년의 세월이 펼쳐지는 만큼 작품에 완숙미가 더해졌다.

이 작품에서 두 주인공이 각자의 일생에서 마주치는 순간은 길지 않다. 그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불쑥불쑥 이 편의 삶으로 끼어 들어오거나 우연히 마주치는 타인들과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운명의 끈으로 엮인 이들의 일생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마리와 큐를 중심으로 그들의 부모 세대와 자녀들의 삶까지 포괄하는 데다 작품의 배경도 후쿠오카에서 시작해 오키나와 도쿄 런던 파리를 넘나든다.

마리와 큐의 삶의 위기는 이들이 열 살이 되던 해에 찾아온다. 이들과 늘 함께 어울리며 정신적 지주가 됐던 마리의 오빠 소이치로가 등나무에서 목을 매 자살하면서부터다. “안녕, 또 보자”는 엽서가 유서의 전부. 다정하고 조숙했던 소이치로의 죽음을 계기로 이들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마리의 평화롭던 가정은 소이치로의 죽음으로 균열이 생긴다. 엄마는 아들을 잃은 마음을 치유한다며 런던으로 가버리고, 마리는 남자친구와 가출해 도쿄에서 지낸다. 도쿄에서 지내는 동안 마리는 여러 남자와 어울리며 숱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때로 그 이별은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엄마는 내킬 때면 언제나 가족과 마리의 곁을 떠난다. 마리의 남편 하지메와 아버지 아라타는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하지메는 죽는다. 마리의 삶에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죽음이나 죽음의 위협이 있다. 그것들은 소이치로의 죽음과 겹치며 평생 그녀를 두렵고 외롭게 만든다.

조폭이지만 마음 여린 아버지, 호스티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큐. 그는 어릴 때부터 마리를 숙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이치로의 죽음 뒤 마리는 도쿄로 떠났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다른 남자와 있었다. 우연히 마리와 하룻밤을 보낼 기회를 놓쳐버린 큐는 수치심 자괴감에 사로잡힌 뒤 세계 곳곳을 떠돈다. 큐에게는 숟가락을 휠 줄 아는 능력, 미래를 볼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며 세인들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예지력이 무색하게도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사고로 떠나보내거나, 아이를 잃어버리는 등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상처를 반복해서 겪는다.

마리는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도 그들의 흔적을 끊임없이 재생한다. 큐도 죽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비슷한 상처와 아픔, 추억을 가진 이들은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인생의 여정을 따라 한없이 멀어지는 듯하지만 결국 한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좌안’의 마리 이야기에 감성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함이 있다면 ‘우안’의 큐 이야기는 좀 더 거칠지만 생동감과 약진감 있게 전개된다. 한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동시에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은 조바심도 생긴다. 같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작가의 사뭇 다른 개성과 문체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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