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한 드라마 대신 ‘청정 뮤지컬’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1분


《점점 독해져만 가는 TV 드라마에 지친 그대, ‘청정 뮤지컬’에서 해독제를 찾으라. 독설과 패륜이 난무하는 안방극장과 달리 공연계에선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마음을 노래하는 창작뮤지컬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7일부터 두 번째 공연에 들어간 ‘내 마음의 풍금’(호암아트홀)과 28일 네 번째 공연에 들어가는 ‘빨래’(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5월 1일 세 번째 공연에 들어가는 ‘소나기’(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다.》

‘내 마음의 풍금’ ‘소나기’ ‘빨래’ 순수한 감성 보여줘

‘…풍금’은 1960년대 시골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일곱 살 차이가 나는 총각선생님 동수와 늦깎이 초등생 홍연의 첫사랑을 그렸다. 이 작품은 1987년 발표된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원작으로 했고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차례 제작돼 익숙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뮤지컬이 감동적인 것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나타난 사랑에 설레는 감정을 나비의 날개를 붙잡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동심(童心)과 아름답게 병치한 음악의 힘 때문이다.

극 초반 동수는 풍금을 치며 아이들과 함께 ‘나비 한 마리 내 어깨 위에/나비 한 마리 살며시 앉았네/가벼웁고 소리도 없어/앉은 줄 몰랐네’라며 동심을 노래한다. 이 노래는 마지막 무대에서 ‘나비 한 마리 스쳐간 자리/꽃이 피었네, 내 마음 깊은 곳/조그맣고 소리도 없어/봄이 온 줄 몰랐네’라는 2절과 함께 불리며 사랑의 노래로 탈바꿈한다. 극 중 애벌레(소녀)에서 나비(아가씨)로 탈바꿈하는 홍연이처럼.

여기에 연탄과 전봇대, TV 안테나, 신문지를 바른 벽지, 이승복 동상과 각종 반공구호 등 60년대 누추한 기억의 산물을 살구빛으로 물들여 아련한 추억으로 불러낸 무대는 곱디 고와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소나기’ 역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송가(頌歌)다. 이 작품은 한국 순정소설의 원류라 할 황순원 원작 소설의 내용을 1980년대 시골 고교로 무대를 옮겨 추억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하나는 말로 표현하면 나비가 돼 날아갈까 봐 속만 태우던 한국적 풋사랑에 대한 추억이고 다른 하나는 국어교과서에서 ‘소나기’를 읽은 세대들이 홍역처럼 앓았던 80년대에 대한 추억이다. 전자는 주인공 동석이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와 서로의 소원을 기원한 조약돌을 나눠 가지며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우리 함께 하는 이 순간/말하지 못한 네 마음 내 작은 가슴에 담아둘 거야’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시냇물로 흘러내린다. 후자는 운동권 대학생이 돼 경찰에 쫓기는 동석의 형이 환기시키는 애환과 ‘조용필 오빠’에 대한 여고생의 순정이 교차하며 그 시냇물에 놓인 징검다리가 된다.

무대 위에서 3t 분량의 물을 쏟아 부어 장관을 연출하는 소나기 장면은 순수했던 그 시절에 비해 때 묻고 탁한 현실을 말끔히 씻어내는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순수한 사랑의 상징으로 나비는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소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과 성인이 된 동석이 소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살포시 등장한다. 이는 수백만 마리의 나비를 풀지만 정작 하룻밤 사랑에 목숨을 거는 중국 뮤지컬 ‘디에’와 대비를 이룬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구원하려는 두 작품과 달리 ‘빨래’는 한국사회가 잃어가는 순수함을 외국인 노동자의 해맑은 심성에서 길어 올린다. 5년 서울살이 동안 9번 직장을 옮기고, 6번 이사하고, 2번 남자에게 차인 나영은 세든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옆집 옥탑방에 사는 몽골 청년 솔롱고를 만난다. 솔롱고는 욕설과 반말을 들으며 한국어를 배웠고, 몇 달치 월급을 떼이기 일쑤고 아파도 병원도 못 가는 불법노동자 신세지만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한국)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나영과 솔롱고는 순수한 눈망울을 비누방울 삼아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주름진 내일을 다려요’라고 노래한다. 관객들은 누추하고 혼탁한 일상을 깨끗이 빨아 맑은 햇살에 너는 듯한 개운함을 맛볼 수 있다. 소극장 무대를 벗어나 중극장에 서는 이번 작품에서는 16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가수 임창정과 ‘지킬 앤 하이드’로 스타덤에 오른 홍광호가 솔롱고 역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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