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피아니스트 키신 독주회를 본 후…우리는 왜 키신에 미치는가?

앙코르 10번·커튼콜 38차례

그것은 3부작의 공연이었다.

두 시간에 걸친 1·2부의 본 공연. 여기에 38차례의 커튼콜과 10곡의 앙코르가 부어지며 1시간 30여 분짜리 ‘3부 공연’이 이어졌다.

다시 1시간 여 걸린 사인회까지 더한다면 4부 구성의 ‘교향적 콘서트’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38)의 독주회 얘기이다. 연주자와 관객이 ‘환각적’극한상태까지 치달았던 이날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음악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는,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경험을 했다. 기자 역시 현장에 있었다. 이튿날 국내의 언론들은 이날 밤의 충격을 쉰 목소리로 쏟아냈다. 인터넷 게시판 역시 공연에 대한 팬들의 호평과 찬양으로 평평히 도배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들은 키신에 열광하는 것일까. 키신에게는 정말 다른 연주자들이 갖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일까? 일단 뭐니 뭐니 해도 키신은 피아노를 잘 친다. 1부에서 들려준 프로코피예프의 8번 소나타는 청자들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할 만한 명연이었다. 2부 쇼팽 시리즈로 이어지면서도 그의 초절기교는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건반 위를 난타하는 팔의 움직임은 잔상만 보일 정도였다.

두 번째로 그의 외모를 들고 싶다. 일본 클래식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북실북실 조곡’을 연상하게 만드는 양배추 머리(그래서 머리가 더 크게 보인다)를 한 키신에게서는 천재적인 예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손조차 두툼해 도무지 피아니스트의 손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큰 머리를 흔들며, 지그시 눈을 감고(연주 내내 거의 감고 있다)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 ‘멋있다’!

“관객 원하면 언제든 연주”따뜻한 키신…2300명 환호와 열광

키신은 따듯하다. “관객들이 원하는 한 피아노를 칠 것”이라던 말 그대로 이날 역시 10곡의 푸짐한 앙코르를 관객에게 돌려줬다.

팬 사인회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커튼콜을 받으며 무대로 나와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던 모습에서는 진실함이 솔솔 묻어났다.

키신은 스타와 거장의 높이에서 스스로 몇 계단 내려와 관객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관객 하나하나와 열심히 눈을 맞춘다. 그의 음악에서 이미 한 차례 충격을 ‘먹은’ 사람들은 무대에서 그와 눈을 마주치며 다시 한 번 몸을 떤다. 키신의 추종자는 이렇게 하여 비로소 완성된다. 그날 밤, 예술의전당을 꽉 메운 2300명의 관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