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休&宿/美오리건 주 스키&와인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만년설 절벽슬로프 아찔… 피노누아 와인계곡 포근

《오리건 주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가 많다. 위치는 물론이고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다. 캘리포니아 북쪽을 보자. 바로 거기다. 캐나다와 접경인 워싱턴 주와 남쪽 캘리포니아 주 사이의 태평양변, ‘나이키’의 고향이고 프랑스 것을 누른 ‘피노누아’ 와인 산지다. 하지만 오리건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나이키도 피노누아도 아니다. 자연과 사람이다. 훼손되지 않고 순수한. 오리건 사람들은 특별하다. 남한의 2.6배나 되는 넓은 땅(25만5026km²), 우리(남한)의 7.65%에 불과한 적은 인구(379만여 명)가 선사한 공간적 여유 덕분일까. 오리건의 관문 포틀랜드 국제공항에서다. 미국의 여타 국제공항에서 느껴온 위압감이나 딱딱함이 한결 덜하다. 그것이 내가 포틀랜드공항을 선호하는 이유다. 그 오리건을 2주 전 다녀왔다. 여행 주제는 ‘스키와 와인’이었다. 만년설산 마운트 후드(3428m)와 마운트 배첼러(2764m)에서 봄 스키를, 윌러멧계곡에서 오리건 피노누아 와인을 즐겼다. ‘스키와 와인의 만남’을 통해 새롭게 미국 밖으로 창을 낸 오리건의 멋지고 맛있는 여행현장으로 안내한다.》

미국을 동서로 나누는 기준. ‘백두대간 격’인 로키산맥(북미대륙 분수령)이다. 따라서 서부란 로키의 서쪽 땅이다. 19세기 중반 서부개척기. 40만 명이 서부로 이주했다. 땅을 찾아 혹은 금을 캐러. 초기 교통수단은 소가 끄는 왜건(포장마차)이었다. 그리고 길은 석 달간 2000km를 가야 할 만큼 멀고 험했다. 출발지는 중부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그 끝은 포트 밴쿠버(컬럼비아 강 하구의 포틀랜드 부근). ‘오리건 테리토리’(오리건 워싱톤 아이다호 등 미국 ‘노스웨스트’ 세 주)라 불렸던 미지의 땅이다. 그 길이 ‘오리건 트레일’이다. 오리건 주는 이렇게 서부 역사와 더불어 세상에 태어났다.

○ 아름다운 도시, 포틀랜드

오리건의 중심도시는 포틀랜드다. 이곳은 내가 미국을 종단 횡단하며 다녀본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는 곳이다.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외양이 아니다. ‘사람’이다. 포틀랜드는 ‘사람을 위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도시다. 다운타운을 보자. 그 흔한 마천루 하나 없다. 30여 층 건물이 최고다. 도심의 차량홍수도 먼 얘기다. 걷는 이와 자전거 통행인이 더 많다. 도로를 누비는 건 차가 아니다. ‘맥스(Max)’라고 불리는 경전철과 ‘스트리트 카’라고 불리는 전차다. 그 전차도 다운타운 일정 구간만큼은 무료다.

포틀랜드는 자전거 천국이다. 매일 6000명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단다. 이 수치는 미국 평균의 8배라고 한다. 자전거를 위한 도시설계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표적인 곳이 윌러멧 강을 가로지르는 스틸브리지다. 그 다리는 강 양편 둔치에 마련한 자전거도로(산책로 겸용)와 연결돼 있다. 자전거는 다리를 건너 둔치로 막힘없이 달린다. 다리 통과를 위해 별도로 설치한 전용램프와 강상의 부교 덕분이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신 커피숍은 곳곳에 보인다. 그런 점에서 포틀랜드 도심은 미국이 아니다. 아름드리 가로수가 우거진 거리의 도로 한가운데로 느릿느릿 전차가 다니고 고풍스런 석조건물마다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자리 잡은 이 도시. 사진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유럽이다.

한밤중. 맥주 한잔이 생각나 거리의 바를 찾았다. 그런데 대뜸 신분증을 보잔다. 여권을 두고 왔다고 하자 대번에 ‘입장 불가’다. 다른 바도 마찬가지다. 바마다 입구에서 모든 사람의 나이를 확인한다. 오리건 주의 ‘21세 미만 음주 단속’은 이렇듯 철저했다. 제한연령이 30세인 곳도 있단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이런 도시의 밤거리가 험할 리 없다. 혹시 오리건 주로 자녀를 유학 보내신 분. 선택에 후회 없을 것으로 장담한다.

○ 캐스케이드 산맥이 준 선물, ‘스키천국’ 오리건

북미대륙에는 스키장이 많다. 그러나 빙하스키장은 손꼽을 정도다. 위슬러블랙컴(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정도다. 그런데 마운트 후드가 그렇다. 마운트 후드는 포틀랜드, 아니 오리건의 랜드마크다.

포틀랜드공항으로 하강하는 항공기 안. 마운트 후드의 설봉이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에 있다. 한여름에도 산정에 눈을 이고 있는 이 거산. 그 눈은 팔머 빙하를 덮은 만년설이다. 그리고 여름스키의 무대다.

마운트 후드의 스키장은 다섯 개. 이날 나는 규모와 고도차가 최대 최고인 ‘팀버라인(Timberline)’을 찾았다. 여름스키를 타는 팔머 빙하의 스키장도 여기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던 날. 우리 일행은 차를 몰아 이 산을 향했다. 포틀랜드 도심에서 88km. 하지만 한 시간 반 이상 걸렸다. 해발 1800m의 스키하우스까지 오르는 산길이 눈에 덮여서다. 스키장 규모는 고도차(리프트 최정점과 최저점의 차이)로 가늠한다. 1125m. 위슬러블랙컴에 조금 모자란 수준이다.

이 스키장에는 기념물이 있다. 해발 1829m 설원 기슭의 고풍스러운 호텔 ‘팀버라인 로지’다. 1937년 대공황 때 미연방은 뉴딜정책의 하나로 이곳을 개발했다. 로지는 그때 건축됐다. 팀버라인은 ‘수목생장한계선’을 뜻한다. 그 이름 그대로 로지 위 정상부는 숲으로 뒤덮인 아래와 달리 온통 흰 눈을 뒤집어쓴 빙하의 설원이다. 팔머 빙하의 슬로프(정점 2602m, 고도차 333m)로 데려다 주는 체어리프트가 스키어를 유혹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마운트 배첼러 스키장. ‘하이 데저트’라고 불리는 건조기후대의 ‘센트럴 오리건’(오리건 중부) 중심 타운, 벤드(Bend)의 고원에 있다. 마운트 후드를 내려서자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벤드로 가는 길의 이 도로(하이웨이 26호선)는 오리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흰 눈에 덮인 캐스케이드 산맥이 고원의 들판과 어울려 빚어내는 멋진 풍광 덕분이다. 그 하이라이트는 세 봉우리가 사이좋게 어울린 ‘스리 시스터스’. ‘마운트 배첼러’(총각 산)라는 이 특별한 이름이 인근한 이 세자매봉에서 왔음은 물론이다. 곧이어 벤드. 마운트 배첼러는 거기서 하이웨이 58호선으로 35km 거리다.

해발 1737m 고원이 베이스인 마운트 배첼러 스키장. 산은 그 자체가 거대한 휴화산이다. 마운트 후드처럼 아래 3분의 1만 숲이 형성됐을 뿐 그 이상은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설원. 최정점(2764m)은 백두산 최고봉(2750m)보다 높다. 고도차는 1027m로 마운트 후드에 비해 98m 짧다. 그러나 이 스키장은 원뿔형의 이 화산을 360도 모두 활용한다는 면에서 마운트 후드와 차별된다. 물론 산 뒷면(백 컨트리)은 최상급자에게나 권할 만한 코스다.

벤드의 멋진 숙소 선리버 리조트에서 하루를 묵고 스키여행을 계속했다. 이번에 찾은 곳은 윌러멧 계곡 초입의 큰 고개인 윌러멧패스의 스키 리조트(해발 1560m). 마운트 후드 등 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다운힐 즐거움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이웃한 세 봉우리를 두루 섭렵하는 다양한 슬로프, 북미대륙 최고 경사라는 52도의 ‘절벽’형 슬로프, 나무 사이 깊은 눈밭을 헤치는 트리 런(Tree run) 덕분이다.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스키친구를 사귀었다. 1992년 미국국가대표 스키 팀 감독이고 현재 세계스키연맹(FIS)의 미국기술위원인 랜드 로저스였다. 이 스키장 소유자와 평생 지기인 그는 여기서 고객만족팀을 이끌고 있었다.

천국으로 통하는 길, 101번 하이웨이를 타라

○ 아름다운 드라이브 도로, 오리건 코스트

자동차여행을 좋아하는 분. 죽기 전 오리건 코스트(태평양변)의 하이웨이 101호선(현지에서는 ‘하이웨이 원오원’이라고 부름)만큼은 꼭 한 번 달려보시기를 권한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그리고 편안히 드라이브를 즐길 만한 해안도로가 또 있을까 싶다.

그 시작은 플로렌스라는 어촌마을이다. 오리건 코스트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타운으로 사이우슬로 강이 호수처럼 마을 배후를 장식한 멋진 곳이다. 어촌의 옛 모습은 올드타운에 잘 보존돼 있다. 묵은 곳은 고즈넉한 강 풍광을 발코니에서 즐길 수 있는 강변 모텔 리버하우스인. 그날 저녁은 왁자지껄 소란 피우며 맥주 잔 기울이는 선창주점 스타일의 펍에서 피시앤드칩스와 맥주로 식사를 들었다. 플로렌스에서는 그게 제격이다.

플로렌스에서는 꼭 즐겨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사구 드라이빙과 바다사자 동굴관람, 그리고 헤세타 등대 촬영이다. 플로렌스의 해안사구는 규모도 크지만 아름답기도 그지없는 자연의 경이, 그 자체다. 그 사구를 제대로 보자면 시랜드어드벤처에서 운행하는 듄버기 탑승(사구 주행용 사륜구동차)이 제격인데 롤러코스터 이상의 짜릿함을 맛본다.

오리건 코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멋진 등대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세기의 헤세타 등대. 헬기에서 내려다봐야 제격이지만 시라이언 케이브(바다사자 동굴)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동굴은 태평양 해안의 절벽 아래 형성된 12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해식동굴로 바다사자가 새끼를 낳고 돌보는 천혜의 장소. 동굴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바다사자를 관찰한다. 헤세타 등대는 이 동굴의 반대편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인다.

헤세타 등대를 지나 닿은 곳은 뉴포트. 플로렌스만큼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플로렌스와 다른 점이라면 이곳만큼은 아직도 수백 척의 고깃배가 드나드는 진짜 어촌이라는 사실. 그래서 마을에는 해산물 식당이 많다. 비치도 잘 발달해 해안에는 휴가용 주택도 많다.

프랑스 와인 이긴 자부심…사랑방 같은 시음장

○ 하늘이 내린 선물, 오리건 피노누아 와인

와인 러버라면 ‘저지먼트 오브 파리’라는 말을 알 것이다. 1976년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긴 ‘사건’을 말한다. 이때 출품된 것은 캘리포니아 레드와인. 오리건 피노누아도 비슷한 전기가 있었다. 1979년. 최초(1965년)로 윌러멧 계곡에 피노누아를 심은 데이비드 레트가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올림픽에서 예상을 뒤엎고 3등을 거머쥐었다. 피노누아라면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것을 세계 최고로 쳤다. 그 때문에 자존심 상한 부르고뉴의 와인메이커 로베르토 드루엥은 이듬해 재경기를 요청했고 이번에는 레트가 2등으로 한 계단 더 올라섰다. 7년 후 드루엥은 윌러멧 계곡에 피노누아 포도밭을 일궜다.

기자가 찾은 곳은 윌러멧 계곡의 중심도시인 유진 외곽의 시골. 부드러운 능선의 구릉이 펼쳐진 작은 계곡은 무척이나 낯익은 모습이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을 생각나게 할 만큼. 윌러멧 계곡은 부르고뉴와 위도도 비슷하다. 재배하기 까다롭기로 이름난 피노누아가 오리건에서 멋진 와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공통점도 작용했으리라.

킹에스테이트는 오리건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와인 메이커다. 피노누아 품종만큼은 100% 유기농으로 재배할 만큼 애착이 강하다. 와이너리가 한눈에 조망되는 언덕마루의 방문센터는 자체가 멋진 레스토랑이다. 식탁에 제공되는 야채와 과일 잼 대부분이 직접 유기농기법으로 재배한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위트칙스 와이너리는 킹에스테이트와는 분위기가 정반대로 아주 캐주얼했다. 목조건물의 시음장은 서부개척시대의 바처럼 꾸며졌다. 카우보이 차림의 뮤지션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손님들은 음식을 가져와 이곳 와인을 곁들여 먹는다. 동네 사랑방같이 이용되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오리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관문’ 포틀랜드 가려면

노스웨스트항공 편리

오리건의 관문인 포틀랜드로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루트는 노스웨스트항공(NWA)을 이용하는 것. 노스웨스트는 지난해 델타와 합병해 미국 최대 규모 항공사가 됐다. 규모만 최고가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최고다. 지난해 10월 발간(미국 교통부 항공정책시행처)된 ‘항공여행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6개 분야 중 4개에서 1위다. 그것은 △정시출발도착률(각각 85.3%) △수화물처리 오류 최저 △소비자불만 신고 최저 △최고 정시운항률(비행 취소율 0.5%).

로리 로프그렌 전무(아시아태평양지역 고객 서비스 및 공항운영담당)는 “지난해 연평균 정시출발률 82.8%는 정시운항능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주목할 만한 수치”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허브인 나리타공항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정보|

◇항공로=인천∼나리타∼포틀랜드. 이 노선은 노스웨스트항공(www.nwa.com/kr)이 매일 운항한다. 나리타(출발 오후 3시 25분)∼포틀랜드(도착 오전 7시 20분)는 10시간 30분 안팎 소요.

◇홈페이지

▽스키장 △www.timberlinelodge.com △www.mtbachelor.com △www.willamettepass.com ▽와이너리(유진) △www.kingestate.com △www.sweetcheekswinery.com △www.langewinery.com(던디) ▽숙소 △www.hotellucia.com △www.sunriver-resort.com △www.riverhouseflorence.com ▽어트랙션 △www.sealandadventures.com(플로렌스) △www.sealioncaves.com(플로렌스) △www.hecetalighthouse.com(플로렌스) ▽레스토랑 △www.theblacksmithrestaurant.com(벤드) △www.georgiesbeachsidegrill.com(뉴포트) ▽현지정보 △www.traveloregon.com △www.travelportland.com △www.mthoodterritory.com △www.visitcentraloregon.com △www.visitoregoncoast.com △www.visitlanecoun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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