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이방인의 삶’ 동서양을 품다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이성자 화백의 ‘수성의 도시’.
이성자 화백의 ‘수성의 도시’.
9일 타계 이성자 화백 작품세계

말년엔 ‘우주의 무한함’ 화폭에

“즐거웠던 추억이며 가슴 아픈 기억들, 모든 것이 태평양 한가운데 파묻혀 사라져갔다. 평화로운 나라 프랑스…. 프랑스어 단어 하나 모르는 채로, 가진 것 없는 무일푼의 무명 처지로서 이국땅에서 다시 태어난 셈이다.”(이성자 화백)

1951년 6·25전쟁 와중에 세 아들과 헤어져 파리로 떠난 여인. 쓰라린 가슴을 안고 그랑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들어가 회화와 조각을 배운다. 마흔 살에 첫 개인전을 연 뒤 반세기 동안 전업화가로 활동하면서 동서양의 감성을 버무린 작품세계로 인정받는다.

9일 프랑스 투레트에서 91세의 나이로 타계한 이성자 화백(사진). 스스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그에게 삶도 예술도 치열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그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한 최초의 한국 미술가였고, 광복 이후 전업화가로 유럽에 정착한 첫 세대였다. 같은 세대 작가 중 그만큼 국제성을 갖춘 작가도 드물었다. 정영목 서울대 교수는 “정녕 국제적이었던 고인이야말로 동양을 알되 서양에 빠지지 않았고 서양을 배우되 동양을 잊지 않은 정체성의 화가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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