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3년 히틀러 獨총리 취임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독일 국경 부근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히틀러는 13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18세 때 어머니마저 여읜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림엽서 등을 팔면서 생활했다. 당시 히틀러는 오페라와 바그너에 심취했고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독학으로 지식을 습득했다. 이때 인종이론과 반(反)유대주의에 빠져들었다.

‘독일민족 지상주의자’인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했고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증오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히틀러는 독일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해 1급 철십자훈장을 받았다. 독일이 패전한 뒤 히틀러는 1919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스)이라는 반유대주의를 표방한 작은 정당에 가입해 1921년 당수가 됐다.

1930년 9월 총선거에서 나치스는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이 됐다. 이 시점부터 히틀러의 일생이 바로 나치스의 역사가 되었다. 히틀러는 연립내각에 입각하기를 거절하고 나치스의 독재 지배를 요구했는데 1932년 대통령선거에서 1340만 표(36.8%)까지 득표하였으나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게 패했다. 하지만 나치스는 7월 총선거에서 37.3%를 득표해 여전히 당세를 과시했다. 특히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세력이 히틀러를 지지했다.

힌덴부르크는 경제와 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히틀러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반대파를 탄압하고 1933년 7월 일당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1934년 8월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대통령의 지위를 겸한 지위인 ‘총통’이라고 자신을 칭하게 했다. 이로써 명실상부한 독일의 독재자가 된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유럽 제패를 실현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전 직후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베를린의 지하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에 자살했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