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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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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군부대 등 코앞에
유네스코 “경관 대책있나?”
‘반경 500m이내 건축 제한’
허점 많은 현 조례 손질해야
조선 왕릉은 ‘자연 위에 살짝 정원이 내려앉은 듯’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돋보이는 ‘신(神)의 정원’이다. 따라서 왕릉 내부뿐 아니라 봉분 좌우를 에워싼 산림과 왕릉 앞의 산이 탁 트인 시야에 파노라마처럼 들어오는 ‘경관미’도 문화유산 가치에 포함된다.
지난달 말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실사단도 이런 경관미에 감탄했다. 그런데 실사단은 태종 능인 헌릉(서울 서초구 내곡동) 앞에 늘어선 화훼 단지를 보고 왕릉 경관 보호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는지 문화재청 측에 문의했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보존 관리 의지를 비중 있게 평가하고 있어 경관 보존 대책은 내년 7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되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여부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개발 과정에서 왕릉의 경관미가 소홀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영조 능인 원릉(경기 구리시)의 봉분에서 바라본 풍광은 고층 아파트들이 스카이라인을 훼손한 상태다. 태조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 앞도 마찬가지다. 순조 능 인릉(서초구 내곡동) 오른쪽 경관은 국가정보원의 신축 건물 공사 현장이, 영조 원비 정성왕후의 능인 홍릉(경기 고양시)도 오른쪽에 푸른 산림 대신 군부대가 들어섰다.
능 안에 체육시설이 들어서 왕릉의 전체 경관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중종 계비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서울 노원구 공릉동)과 인근 강릉 사이에는 선수촌과 사격장이 있다. 철종 능인 예릉과 중종 계비 장경왕후 능인 희릉 등이 있는 서삼릉(경기 고양시)도 목장 등이 들어서 능의 중간을 끊어놓은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보호조례에 따르면 문화재 주변 반경 500m(서울시는 100m)에서는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축 등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왕릉의 경관미를 제대로 보존하려면 맞은편 산까지 반경 500m를 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문화재청 궁능관리과 박동석 사무관은 “문화유산 보존에서 경관에 대한 조망권을 가장 중시하는 이탈리아 등 문화재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조망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처럼 문화재 주변 반경과 상관없이 역사문화 경관의 보존을 협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시와 건축 단계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희(조경학) 배재대 교수는 “봉분 앞에 보이는 맞은편 산은 거리와 상관없이 조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이를 심의하는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