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우리는 돌보다 작은 존재일 수도 있어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지금으로부터 약 6개월 전 서해에서 있었던 기름 유출 사건을 기억합니다. 6월 28일, 재앙이라 할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본 안면도의 만리포 해수욕장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개장식과 함께 자원 봉사자들에 대한 감사패 전달식과 개장 축하공연이 밤새 거행되었습니다. 자원 봉사자들이 불과 6개월 동안에 120만 명이나 기름때 제거를 위해 안면도를 찾았다는 것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날 밤 개장 축하공연을 관람하면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 사건이 터진 이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생업을 접고 기름 제거 작업에 골몰하고 있는 현지 주민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눈보라가 몰아치는 해변에서 기름때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한 노파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췄습니다.

그 노파는 혹한 속에서도 바위틈에 끼어 있는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신이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벗어 시꺼먼 기름 덩어리들을 알뜰하게 닦아냈습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던 것은, 기름때를 완전히 벗긴 그 작은 돌을, 노파가 본래 있던 바위틈에 다시 끼워 넣는 장면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노파 주변에는 얼른 보아도 수십만 개의 자갈돌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파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그 하나하나를 가리지 않고 모두 수건으로 닦아 본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을 결심을 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거나 소양을 갖추고 있을 것 같지 않던 그 노파가 행동으로 보여준 교훈은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바닷가나 들판이나 길가에 무심히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자갈과 돌들에게도 우리 생명을 윤택하게 감싸주고 껴안아주는 금쪽같은 은혜가 켜켜이 묻어 있다는 것을 노파는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본래 있을 자리에 존재하고 있어야 우리 생명체들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주먹만 한 돌 한 개가 바위틈에 끼어 있으면 어떻고 길가에 흩어져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그 노파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있을 그 자리에 있어야만 비로소 그 모습과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저 길바닥에 흩어진 자갈돌보다 작고 무의미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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