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休&宿<27>노르웨이 옛 수도 베르겐港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1분


어항은 그림처럼 빛나고… 어시장은 떠들썩하네

《지난해 9월 4일 노르웨이의 옛 수도 베르겐의 도심. 100년 전 바로 이날 펼쳐졌던 시민들의 긴 행렬이 재현되고 있었다. 물론 행선지는 달랐지만. 100년 전 행렬의 목적지는 남쪽으로 8km 거리의 트롤헤우겐(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별장)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시내에 자리 잡은 ‘그리그 홀’(음악당)이었다.

이날은 북구의 쇼팽, 노르웨이의 국민 음악가로 칭송받는 그리그(1843∼1907)가 숨진 지 꼭 100년 된 날이었다. 행렬은 그리그 추모연주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100년 전의 음울한 장례식과 달리 이날은 그리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로 진행했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피오르의 수도’다. 반도 서편 노르웨이 해의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발달한 거대한 피오르를 섭렵하자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관문인 덕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리그는 베르겐에서 태어나 베르겐에서 숨졌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민요도 사랑했지만 피오르 역시 사랑했다.

그의 피오르 사랑은 지극했다. 22년간 매년 여름이면 찾아와 부인 니나와 함께 지내며 수많은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트롤헤우겐이 바로 피오르 바닷가 언덕에 있다. 그리고 유언도 ‘내가 사랑하는 피오르를 볼 수 있게 물가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유언대로 그는 트롤헤우겐의 언덕 뒤편 피오르 해안의, 그것도 피오르가 잘 조망되는 바위 절벽 한중간에 묻혔다. 후에 숨진 부인 니나도 함께.

피오르, 그리그, 입센(헨리크 입센·1828∼1906). 모두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편의 작지만 큰 나라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표상이다. 그리고 이 셋을 나는 이날 베르겐에서 모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그가 작곡한 페르귄트 조곡의 ‘솔베이의 노래’를 통해서다. ‘페르귄트’라는 한 몽환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이 시극은 입센의 작품이다. 그리그는 거기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혔다. 페르귄트와 그리그가 태어난 피오르의 수도, 베르겐으로 여행을 떠난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조성하 기자

오전 6시. 잔뜩 찌푸린 북유럽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잿빛 일색이다. 여기는 베르겐 항의 중앙에 자리 잡은 피시마켓(어시장). 도시는 아직 아침 정적에 휩싸여 조용하다. 그 잿빛하늘 아래 침묵하고 있는 피오르의 검은 바다를 응시하며 주머니 속의 MP3플레이어를 작동했다. 고아한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그의 ‘솔베이의 노래’였다.

○7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항구

초행의 노르웨이 여행 길에 이 노래부터 챙긴 데는 사연이 있다. 31년 전인 1977년의 일이다. 당시 서울 ‘공간사랑’의 한 음악 강좌에서 이사오 도미타라는 연주가가 무그신시사이저(건반연주 전자악기)로 편곡해 연주한 한 음악을 듣고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당했는데 그것이 솔베이의 노래였다. 그리그라는 작곡가와 더불어 그의 음악적 배경이 노르웨이 피오르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됐고 이후 피오르 한가운데서 이 음악을 듣고 싶은 바람을 갖게 됐던 것이다.

솔베이의 노래와 더불어 내 마음속에 31년간 간직되어온 노르웨이. 그러나 갈 길은 쉽지 않았다. 마침 노르웨이 지방공항 소방대의 파업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공항의 창문도 없는 공항호텔에서 예정에도 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겨우 도착한 스타방에르(노르웨이 서해안). 베르겐을 향한 4시간의 쾌속선 여행이 시작됐다. 해안 모두가 피오르라고는 했지만 협곡과 눈, 빙하로 이뤄진 진정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베르겐 항에 진입한 것은 오후 9시쯤. 7개의 큰 산으로 둘러싸인 베르겐은 마침 지는 해의 붉은빛으로 붉게 물들면서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물가의 목조와 석조 건물, 산등성을 타고 오르며 숲 속에 깃든 아름다운 주택.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노르웨이, 아니 베르겐의 풍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과거 독일 ‘한자동맹’ 무역항으로 영화

거기서도 돋보였던 것은 항구 왼편 길가에 수십 m나 다닥다닥 붙은 채로 줄지어 늘어선 ‘브리겐’ 목조주택군(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었다. 여행안내 책자마다 베르겐의 첫 장을 장식하는 곳으로 베르겐의 랜드마크다. 베르겐은 1360년 북부 독일(작센 주)의 무역상이 발트 해와 북해변 여러 나라의 항구와 계약을 맺고 이후 400여 년간 무역을 독점해온 ‘한자동맹’의 수많은 무역항 중 하나다. 당시 베르겐 항에는 한자동맹 측이 파견한 독일인 수출입무역 담당관의 집단거주지가 따로 있었는데 그게 브리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브리겐은 1700년대 화재로 소실된 후 그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다.

브리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고창한 낡은 집의 1층은 여태 상점으로 이용된다. 한 집은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현관 문틀까지 함께 비틀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문으로 사람들이 출입을 한다. 브리겐의 한 끝은 ‘한자박물관’으로 한자동맹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또 목조주택 사이로는 골목이 있는데 여기서 또 다른 모습의 브리겐을 만난다.

항구에서는 매일 오전 피시마켓이 선다. 연어와 새우, 게 등을 가공한 먹을거리와 펄펄 살아 있는 생선 외에도 노르웨이 스웨터와 장신구, 치즈 등 다양한 물건을 판다. 손님 대부분이 관광객인지 세금 환급 서류도 발급했다. 노점상까지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노르웨이.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베르겐을 여행하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페르귄트 조곡’에 등장하는 ‘솔베이의 노래’가 감돌았다. 남쪽의 피오르 해안 숲 속 언덕에 자리 잡은 트롤헤우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트롤헤우겐은 그리그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아담한 여름 별장과 그의 작업실, 기념관과 기념 콘서트 홀로 구성된 ‘그리그 기념관’이다.

그리그는 이 집에서 1885년부터 부인 니나와 함께 살며 수많은 작품을 썼고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 집 안에서는 그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복사본이기는 해도 육필 악보와 피아노, 이제 막 자리를 뜬 듯 단정하게 정리된 식탁, 낚싯대와 우산 등 자잘한 소지품이 잘 정돈돼 있어서다. 새롭게 안 것이라면 그가 150cm에도 못 미치는 단구였다는 사실이다.

○노르웨이 국민음악가 그리그 발자취 생생

언덕마루의 집에서 조금 내려간 등성에 작은 오두막이 보인다. 그리그가 곡을 쓸 때 이용했던 작업실인데 정면에 피오르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거기에 그의 손가락이 오갔던 피아노 한 대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홀로 놓여 있다. 집을 둘러싼 언덕은 온통 숲으로 그 안에는 200명쯤 들어갈 ‘트롤살렌’이라는 콘서트 홀도 있다. 지붕이 잔디로 덮인 바이킹 시대의 전통주택 양식인데 수시로 공연이 열린다고 했다.

이날 오후 베르겐은 특별했다. 파란 하늘이 열린 것이다. 피오르는 지형특성상 비가 많다. 그러니 피오르에서 화창한 날씨는 기막힌 이벤트다. 이런 날이면 베르겐을 병풍처럼 둘러싼 플로이엔 산(해발 350m)의 푸니쿨라(산기슭 경사에 가설한 레일을 타고 케이블에 매달려 오르내리는 전차)는 더욱 붐빈다. 정상의 전망대까지 오르는 데 7분. 거기에 서니 아름다운 베르겐의 항구와 도시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저 멀리 부두에는 예이랑에르 피오르의 올레순까지 나를 태우고 갈 후르티루텐 여객선도 보였다. 예이랑에르라면 송네 하르당에르 오스테르와 더불어 노르웨이의 4대 피오르라고 불리는 곳. 모두 베르겐 주변에 있는데 그래서 베르겐은 ‘피오르의 관문’이라고 불린다.

베르겐=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베르겐=남쪽 스타방에르에서 쾌속선 타이드호로 4시간 소요. 암스테르담∼스타방에르 항공기로 2시간 20분 소요.

◇관광정보 ▽홈페이지=www.visitbergen.com ▽베르겐카드=이 카드 한 장이면 베르겐 관광은 만사형통. ‘Tide’라고 쓰인 공영버스, 플로이엔 산 푸니쿨라(약 70크로네)가 무료다. 입장료와 관광버스도 할인. 1일권 190크로네, 2일권 250크로네. ▽빌비테(과학관)=잠수함 조종, 일기예보 체험, 유정 탐사 등 75가지의 체험이 가능한 과학관. 120크로네(8월 18일부터 연말까지는 무료). www.vilvite.no ▽아크바리에(수족관)=피오르 해안의 수족관. 연어 대구 등 특산 어종과 더불어 게 등을 직접 만지는 터치 풀도 있다. 150크로네(베르겐카드 25% 할인) www.akvariet.no ▽베르겐 가이드투어=트롤헤우겐이 포함된 3시간(295크로네)짜리, 1시간 30분(150크로네)짜리 두 코스. ▽시티 웍스(도보시내관광)=6월 1일∼8월 31일, 1시간30분 소요. 영어로 안내. 70크로네. www.bergenguideservice.no ▽트롤헤우겐=1885년 지은 그리그 별장 및 기념관. 5월 1일∼9월 30일 매일 개장(오전 9시∼오후 6시). ▽트롤살렌 콘서트홀 연주회=트롤헤우겐의 그리그 기념 콘서트홀. 시즌(6월 7일∼10월 26일) 중 8월 30일까지는 수 일요일(오후 7시 30분), 9월 7일 이후는 일요일(오후 2시)에만 열린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에 시내 관광안내소(피시마켓 부근)에서 버스 출발. ▽브리겐=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오전 11시와 정오에 가이드투어(영어). www.bymuseet.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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