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곰보다 힘센 개구리

  • 입력 2008년 6월 14일 03시 00분


‘이솝에서 현대까지 세계의 우화 모음집’ 그림=질케 레플러, 베틀북
‘이솝에서 현대까지 세계의 우화 모음집’ 그림=질케 레플러, 베틀북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깊은 산 속에 작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퉁방울 눈을 가진 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지요. 어느 날 아침, 물 마시러 왔던 족제비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개구리를 발견합니다. 족제비는, 이 산 속에 살고 있는 어떤 포식자도 외면하는 하찮은 존재가 바로 개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난기가 동한 족제비는 개구리에겐 소름끼칠 정도로 악의에 찬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개구리에게 무동을 태워달라는 요구가 그것입니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몇 백 배의 하중을 가진 족제비를 무동 태우고 버틸 수 있는 개구리가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적의가 세척된 온후한 가슴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천성이 착했던 개구리는 잠수해버리지 않고, 족제비의 요구를 선선히 받아들여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놀란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족제비 쪽이었습니다. 개구리가 자신을 등에 업고도 두 다리를 온전하게 버티고 서는 괴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연못 뒤에 있는 나무 뒤에서 개구리와 족제비가 벌이고 있는 초현실적인 광경을 엿보던 여우가 있었습니다.

여우 역시 자신에게는 한입 거리도 안 되는 개구리에게 다가가 자기를 족제비 등에 태워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구리의 표정에서는 당황하는 기색을 전혀 읽을 수 없었습니다. 여우가 족제비 등에 냉큼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입니다. 때마침 연못가를 어슬렁거리던 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상천외한 광경을 목격하고 목구멍에서 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놀라버렸습니다. 그러나 음험한 곰은 거드름을 피우며 개구리에게로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고 지껄였습니다. 개구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곰은 어기적어기적 개구리와 족제비의 등을 타고 올라 여우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마술사라 할지라도 보여줄 수 없는 이런 기막힌 구도는 보편성조차 상실하고 있으므로 어느 누구도 믿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그 숲 속의 연못가에서는 실제로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광경이 가능했던 것은 개구리가 보여준 베푸는 삶 때문이었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을 베푼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우리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놀라운 힘이 존재합니다. 베풀어준다는 것은 그래서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베푸는 삶에 살의를 갖고 들이댈 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소하고 연약해 보여도 파괴되지 않으며, 찌그러지지 않으며, 주저앉지 않으며, 휘어지지도 않고, 부러지지 않게 지탱해주며, 어떤 비극과 모순도 극복하는 불가사의한 괴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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