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국가를 위한 희생은 무조건 숭고한가

  • 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7분


◇국가와 희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이목 옮김/276쪽·1만3000원·책과함께

서울 전쟁기념관은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국가와 민족을 구한 사람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전쟁기념관의 건립 목적에는 ‘숭고한 희생’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숭고한 희생의 주인공 중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맞서 목숨을 바친 이들도 포함된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 표현의 의미를 숙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표현이야말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되풀이한 표현과 같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첨병으로 활동하다 죽은 자들에게, 다른 한쪽에선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전쟁으로 사망한 이들에게 똑같이 ‘숭고한 희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에 대한 저자의 고찰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어느 나라에든 국가가 관할하는 전사자 추모시설이 있다. 나라마다의 역사적 특수성을 제거하고 나면 국가에 대한 개인의 희생을 숭배하고 강요하는 본질만 남는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뜨거운 감자’인 야스쿠니신사도 일본의 독특한 종교시설이라는 점과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장치였다는 일본만의 특수성을 빼놓고 보면 국가의 전사자 추모행위라는 보편성에서 그 의미를 살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다만 저자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걸 의식한 듯,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에도 영령 추모 시스템이 있다고 해서 야스쿠니신사의 문제점과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모호하게 호도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처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조국을 위한 희생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체제의 문제점을 고찰한다. 야스쿠니신사, 한국의 전쟁기념관, 독일의 전사자 추모관 등의 사례가 이어진다.

영령 추모 시스템은 군대를 보유한 국가 어디서나 나타난다. 이 시스템을 거부하려면 군대와 국가가 모두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모든 걸 없애자는 건 공상적 평화주의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곤 성서 속 아브라함의 사례를 든다. 아브라함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헌신을 다하기 위해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오늘날 현대판 아브라함이 신을 위해 아들을 희생하겠다고 공표했다고 치자. 법적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찬사의 대상이 된다.

숭고한 희생의 강요는 이처럼 모순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불가피한 모순이라고 본다. 그 대신 논리의 모순을 진지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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