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70년 퇴계 이황 별세

  • 입력 2007년 1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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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퇴계 이황이 157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34세에 벼슬길에 들어선 뒤 70세에 사망할 때까지 140여 차례 임명, 79번의 사퇴라는 기록이 말해 주듯이 그는 높은 학문과 청빈한 삶으로 나라의 신뢰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퇴계’라는 인물은 ‘주리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성학십도’ 등의 이론과 저서 등으로 잘 알려진 성리학의 아이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실제로 그는 누구 못지않게 풍류를 즐기는 남자였다.

단양군수로 재직할 당시 단양팔경을 지정해 사람들이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며, 다양한 산세 등을 기록해 어떻게 산을 오르면 좋은지에 대한 등산법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남녀간의 사랑은 비도 오고 바람이 부는 만물의 생성(‘퇴계언행록’)”이라는 ‘성리학적’으로 로맨틱한 발언도 남겼다.

퇴계가 즐긴 풍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매화에 대한 사랑이다.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으로 깍듯이 부르며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가 하면 도산서원 한구석에 심어진 매화에 꽃이 필 때면 달이 차도록 꽃나무 곁을 빙빙 돌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병이 위독했을 때는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매화에게 보일 수 없다며 매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다니 매화에 대한 그의 지극정성을 짐작할 만하다.

남다른 ‘매화사랑’은 그의 생애에 풋풋한 로맨스도 하나 남겼다.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한 그는 관기 두향을 만나게 된다. 관비였으나 총명한 데다 학문을 익힌 두향은 조선 최고의 학자였던 퇴계를 깊이 연모했으나 꼿꼿한 퇴계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매개체가 된 것은 매화였다. 두향이 꽃 빛깔이 희면서도 푸른빛이 나는 진귀한 매화를 어렵게 구해 보내자 퇴계는 “나무야 못 받을 것 없지”라며 받아들여 동헌 앞에 심고 즐겼다. 두향과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으나 9개월간의 임기를 마치고 풍기군수로 옮겨 갈 때 퇴계는 두향이 선물한 매화를 챙겨 갔다. 매화는 도산서원에 옮겨 심어졌다.

노년에 벼슬을 떠나 안동 도산서원에 머물던 퇴계는 서원 입구에 ‘절우사’라는 정자를 짓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 등과 함께 매화를 심고 즐겼다. 세상을 떠난 12월 8일 아침, 퇴계가 남긴 유언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 였다고 한다.

최근 새로 나온 1000원권 지폐에는 퇴계의 얼굴과 더불어 도산서원과 매화나무가 담겨 있다. 푸르스름한 지폐에 인쇄된 매화나무는 마치 두향이 선물했다는 청매화를 연상케 한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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