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동풍’ 국립국어원

  • 입력 2007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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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짜장면” 국어원만 “자장면”, 天安門은 ‘톈안먼’으로… 독자들 “헷갈려”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면 문제를 살피고, 고칠 부분은 고치겠다는 자세가 필요한데 처음부터 고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나왔다면 이런 자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정책방송(KTV)에서 열린 한글문화연대의 ‘바람직한 외래어 정책 수립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김수업 문화관광부 국어심의회 국어순화분과위원장이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꺼낸 말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외래어 표기 오남용의 실태와 이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를 후원한 국립국어원 측 토론자는 “어문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번 정해진 원칙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종합토론 때도 국어원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언중(言衆)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공급자 중심의 어문정책’의 현주소를 보여 준 현장이었다.》

○정부와 공기업이 외래어 남용에 앞장

노무현 정부 들어 공기업 등이 로드맵 어젠다 태스크포스 멘터링 같은 외래어 남용에 앞장선 행태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우리말 표현을 두고 파출소를 치안센터,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꾸겠다는 발상 등 ‘언어사대주의’를 드러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대구대 이정복 교수는 한국통신은 KT, 담배인삼공사는 KT&G, 철도공사는 KORAIL 식으로 정부투자기관 내지 공기업들이 앞 다투어 회사 이름을 외래어나 외국어로 짓는 것을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우리말의 미래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비판했다.

지역 축제 이름에서 외래어 오남용도 심각한 실정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이성태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과 대만은 축제 이름을 자기 나라말로 짓고 영문 표현을 부가하는 추세이나 한국은 한글 표현은 생략하고 곧장 영어 표현을 남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항공(JAL)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표어 ‘YOKOSO! JAPAN’의 YOKOSO는 ‘어서 오세요’라는 일본어를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HI-SEOUL 페스티벌’ ‘컬러풀 대구 축제’처럼 국적 불명의 외래어를 쓰는 사례가 많았다. ‘컬러풀 대구 축제’의 경우 한약재 시장으로 유명한 약령시 홍보문구로 ‘미술 치료’쯤에 해당하는 ‘Color Therapy’라는 엉뚱한 표현을 쓰는가 하면 공연 안내문에서 ‘동성로 D/B/G다 프로젝트’(‘동성로 디비지다 프로젝트’란 뜻)와 같은 국적 불명의 표현을 썼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Dynamic Korea’나 관광브랜드인 ‘Korea, Sparkling’ 같은 영어 표현이 해외가 아닌 국내용으로 그대로 쓰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언어 주체 의식을 되찾으려면 표기법부터 바꿔야”

‘빌려온 말’에 안방을 내주는 이런 태도는 이미 우리 어문 정책에 배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글연구회의 최성철 회장은 “우리는 외래어를 고유어나 한자어와 더불어 우리말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본어에선 외국어로 규정한다”며 “외래어가 고유어 대신 국어사전을 차지하면서 구두에 눌려 가죽신과 갖신이 죽고, 뉴스에 눌려 ‘새 소식’이 죽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어와 일본어의 지명이나 인명 표기에 현지 원음을 적용하는 것도 언어 사용의 주체성을 상실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호서대 김태성(중어중문학) 교수는 “외국어의 인명이나 지명 표기에서 맨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독자 인식의 편의와 정확성인데, 국립국어원의 표기 방식은 독자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고 중국어의 정체성을 살려 준다면서 ‘중국어의 왜곡과 파괴’를 유발한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陝西(섬서) 山西(산서)는 우리식 독음으로 확연히 구별할 수 있고 중국어로도 성조로 구별이 가능하지만, 현행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둘 다 ‘산시’가 돼 구별이 안 된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은 그대로 ‘개선문’으로 부르면서 중국의 天安門은 ‘톈안먼’으로 부르는 것이나 珠江을 한국어 발음인 ‘주강’도 아니고 중국어 발음인 주장도 아닌 주장강(珠江江)으로 부르는 것도 언어의 주체성 상실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이다. 신해혁명을 전후해 그 이전 인명과 지명은 우리식 독음으로, 그 이후의 것은 중국식 독음으로 표기한다는 기준의 자의성도 여전히 질타를 받았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똘스또이를 톨스토이로 표기하는 등 된소리 표기를 하지 못하게 한 원음주의가 실제 발음과 모순이 있고 중국에서 동북 3성의 지명을 한자음으로 표기하는데 우리가 먼저 원음주의를 채택한 것이 우리 자존심을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문제가 제기된다고 바로 개정하면 국민의 언어생활에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장기적으로 개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언중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짜장면 아니죠 자장면 맞습니다”를 고집해 온 국어원의 태도 변화가 주목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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